[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42>간직하고픈 겨울의 시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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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
김용석 철학자
계절의 변화는 인생의 선생님입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 줍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밤하늘에는 삶의 진실이 계시되는 듯합니다. 현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소소한 일상의 태도를 바꾸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계절의 입김에 따라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 가운데 어느 하나를 각별히 선호하기도 합니다.

마치 가을이 홀로 있고 싶어 하는 시간이 되듯이, 겨울은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시간이 됩니다. 김현승 시인도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고독과 사색으로 대표되는 가을은 ‘나’의 계절입니다. 한편 따듯함을 찾게 하는 겨울엔 사람의 체온조차 항상 반갑습니다. 누구하고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겨울은 ‘우리’의 계절입니다.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에서 ‘겨울’의 제1악장은 차가운 눈 속에서 얼어붙고 떨리고 격심하게 부는 무서운 바람에 쉴 새 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너무 추워서 이빨이 따닥따닥 부딪치는 경험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곧 이어 제2악장에서는 집안의 따스한 화로에 모여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그려집니다. 이는 김용호 시인이 노래했던 ‘눈 오는 밤’의 정경을 연상하게 합니다. “오누이들의/정다운 이야기에/어느 집 질화로엔/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함께 모여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일, 그것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일 것입니다. 아주 간단하죠. 하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겨울에는 계절의 혜택으로 자연스레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을 더욱 찾게 되지만 우리 일상에선 그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집’을 짓기 어렵기 때문일 겁니다. 현대 사회 이론에 크게 공헌했던 철학자 게오르크 지멜은 이 문제를 간단한 은유로 설명합니다. ‘사회라는 집은 개인이라는 작은 집들의 집합체’라는 거죠. 공동체는 개인을 벽돌 삼아 지은 집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개인이라는 집은 울퉁불퉁 오밀조밀 다양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것으로 큰 집을 구성하기란 참으로 어렵겠지요. 개인의 집을 획일적인 벽돌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공동체적 삶을 위해 성찰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달력의 시간과 계절의 시간은 동기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달력의 한 해는 1월에 시작해서 12월에 끝나지만, 계절의 한 해는 봄으로 시작해 겨울로 끝납니다. 겨울과 함께 한 해를 마감하고 새봄과 함께 새해를 시작하는 거죠. 이제 계절적 의미의 새해를 시작하는 봄이 목전입니다.

봄은 ‘너’의 계절입니다. 벌 나비처럼 너를 찾다 보면 나를 잊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여름은 ‘너와 내’가 손잡고 가는 계절이지만 아직 우리로 성숙하지 못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다시 나의 계절 가을을 거쳐 겨울에 이르러 우리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난히 혹독했던 올겨울도 안아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계절이었습니다. 그 겨울과 이별을 해야 할 때입니다. 겨울의 시간들이 더욱 소중해집니다. 겨울 내내 쌓아두었던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와 의미들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어떤 계절에든 ‘함께 있게 하소서!’ 하고 기원하고 싶습니다. 봄이 오면 각자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향해 더욱 질주하겠지만, 겨울의 시간이 가르쳐준 의미들은 우리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김용석 철학자
#계절#계절 변화#겨울#비발디#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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