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5>고통 소비하는 ‘사진 관음증’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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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 ‘부역자’, 1944년
로버트 카파, ‘부역자’, 1944년
눈에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많은 의미가 담긴 사진들이 있다. 전설적인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사진들이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1944년 8월 18일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찍은 ‘부역자’라는 제목의 사진이 특히 그렇다.

이 사진에서 중요한 건 사람들의 시선이다. 남자들도 더러 있지만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현장에 여자아이들도 있다. 아이들을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 하나의 지점이 있다. 머리가 깎이고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여자. 모두가 그녀를 쳐다보며 기뻐하고 있다. 경찰도 그렇다. 기뻐하지 않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다. 경멸의 대상인 여자와 옷 보따리를 들고 가는 여자의 아버지, 이렇게 둘이다. 아니, 여자가 안고 있는 갓난아이까지 포함하면 둘이 아니라 셋이겠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온갖 욕을 하며 여자를 끌고 가는 것은 부역자이기 때문이다. 죄목은 1940년에서 1944년까지 프랑스를 점령했던 독일군 병사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 여자는 독일군이 떠나자마자 머리가 깎이는 치욕을 당했다. 머리가 깎이는 동안 여자의 아버지는 아이를 안고 옆에 서 있어야 했다.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지 여자를 거리로 끌고 다녔다. 프랑스 전역에서 2만 명 이상의 여성이 같은 치욕을 당했다. 때로는 아무 죄가 없는 여성들도 그렇게 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집단 히스테리의 주동자는 레지스탕스 운동과는 거리가 먼 젊은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를 은폐하기 위해서 나치의 전매특허인 집단 히스테리를 이용했다. 나치도 아리안족이 아닌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 독일 여자들의 머리를 깎아 치욕스럽게 했다.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사진이다. 그런데 머리가 깎여 거리에서 조리돌림을 당한 여성의 눈에는 이 사진이 어떻게 보일까. 머리를 깎인 것만으로도 치욕스러운데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다니. 수전 손태그의 말대로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관음증’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 이 사진에는 관음증적 요소가 없지 않다. 그러나 카파의 사진은 스스로를 폭력의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까지 동원하여, 타인을 향한 집단적 폭력에 가담하는 모순과 아이러니를 고통스럽게 응시함으로써 관음증에서 벗어난다. 그러한 응시가 사진의 윤리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로버트 카파#부역자#사진 관음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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