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40>걱정말아요, 시작하는 동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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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
김용석 철학자
인간은 ‘시작하는 동물’입니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태어나서 삶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시기를 정해서 또는 어떤 때를 기회 삼아 뭔가 새로이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별나게도 새로 시작하는 게 많습니다.

신년 벽두에도 우리는 뭔가 새로이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다짐을 했지요. 이럴 때면 상기하는 금언이 있습니다. 시작이 반(半)이다.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잘 시작하면 반쯤 성공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시작이 반이라면, 나머지 반은 무엇일까요. 끝 또는 마무리라고 합니다. 무슨 일에서든 일의 시작과 함께 일의 끝을 맺는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시작된 일이 끝에 이르려면 ‘과정’이 필요합니다. 시작과 마무리 사이에는 과정이 있습니다.

과정은 시작이나 끝과는 달리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별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기 십상입니다. 사람들은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의 첫날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한 해를 메우는 수많은 날은 별로 주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정이 시작을 끝에 이어주지 못하면 그 시작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시작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거지요. 여기에 이른바 ‘작심삼일’의 경고가 있는 겁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끝은 시작과 과정이 있어야 존재합니다. 그래서 끝 또한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과정은 어떤 일의 반을 차지하는 것도 모든 것도 아니지만, ‘언제나 의미 있는 무엇’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의 완성은 과정의 필연적 결과입니다. 우연히 시작할 수 있지만 우연히 지속되는 과정은 없습니다.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반성과 수정의 가능성 때문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금언이 있습니다. 역시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지요. 하지만 첫 단추를 잘못 끼워도 과정에서 반성이 있으면 다시 잘 맞춰 끼워 갈 수 있습니다.

반면 과정이 부실할 때, 잘못 끼운 첫 단추는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고칠 수 없게 됩니다. 마지막에 단추가 하나 남거나 아니면 단춧구멍이 하나 남게 되는 ‘마무리 불가’의 상황은 첫 단추 끼우기의 실수에만 기인하지 않지요. 과정에서 잘못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수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과정에 충실하면 다음 단추를 끼울 때 잘못을 반성하고 수정하면서 훌륭한 마무리를 할 수 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고 ‘작심삼주’쯤 되는 시점입니다. 반성하고 수정하기에 좋은 때입니다. 마음먹고 나서 실행 삼일 만에 끝난 계획이라면 계획 자체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획에 욕심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계획이라면 잊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3주를 실행한 계획이라면 위기를 맞아도 성찰하고 수정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진정한 노력은 ‘하면 된다’라는 의지의 표현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하면 계속 더 잘할 수 있다’라는 지혜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한 주를 시작하면서, 또한 하루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시작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일 수 있지만 성실한 과정은 시작의 의지에 성찰을 얹어줍니다. 과정은 시작한 일을 완성에 이르도록 하는 경로입니다. 과정이 곧 삶의 길이요, 도(道)인 것이지요. 과정을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곧 ‘일상생활에서 도 닦기’입니다.

김용석 철학자
#인간#동물#시작이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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