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없는 낙태 없어”…‘낙태 공범’ 의사들의 속사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9일 16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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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 낙태를 말하다] <2> 낙태 의사의 ‘상담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최근 5년간 낙태 관련 판결문 80건 전체를 입수했습니다. 분석 결과 법정에 선 피고인 10명 중 7명은 의사 등 의료진이었습니다.

취재팀은 낙태수술 경험이 있는 산부인과 의사 3명을 만났습니다. 1980년대 정부 가족계획위원으로 합법적 ‘낙태의사’였다가 30대 여성 낙태수술 혐의로 처벌받은 이모 씨(78), 20년 넘게 한 낙태수술을 5년 전부터 중단한 김모 씨(57) 그리고 약물·알코올 중독 여성에게 낙태수술을 해준 혐의로 기소된 박모 씨(55·여)입니다.

낙태에 관한 이들의 생각은 모두 달랐습니다. 그래서 세 의사가 자신의 상담실에서 환자들과 나눴던 대화를 재구성했습니다. 법과 윤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의사들의 딜레마가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산부인과 원장 이 씨가 쇳물에 누렇게 물든 산부인과 간판 옆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봤다. 허름한 유흥가 곳곳에 도박장과 당구장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었다. 그 사이로 한 여성이 서둘러 건물로 걸어 들어왔다. 쫓기는 듯 발걸음만 봐도 어떤 환자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씨는 차트와 여성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책상 모서리만 바라봤다. 차트에 적힌 여성의 주소지는 이 씨 병원에서 시외버스로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다. 보호자 칸은 비어있었다.

“기혼이세요?”
“…”

“첫 임신인가요?”
“…”

“보호자 같이 왔어요?”
“…”

여성은 대답 없이 고개만 가로저었다. 이 씨는 더 묻지 않고 여성을 초음파실로 안내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정이 있음을 직감했다. 낙태를 말려도 다른 병원을 전전할게 불 보듯 뻔했다.

시선을 계속 피하며 초음파실 침대에 눕는 여성을 보자 옛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1980년대 정부 지정 가족계획위원이었다. 인구가 너무 빨리 늘어나자 국가에서 낙태를 하도록 지원까지 했다.

그 때는 여성들이 진료실에 죄인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12주 이전 임신부에게 “세포를 떼어내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수술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인구가 줄자 낙태는 다시 범죄행위가 됐다.

초음파 검사 결과 임신 8주였다. 여성은 까만 영상 속 아기집을 보고도 미동하지 않았다.

“오늘 수술 할 건가요?”
“…”

여성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수술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수술 후 문제가 없는지 봐야 되니 한 번 더 오세요.”

회복실에 누운 여성은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몇 달 뒤 이 씨를 찾아온 건 고소장이었다. 여성의 낙태를 도운 죄였다. 고소한 사람은 여성의 남편이었다. 두 사람은 이혼 소송을 앞두고 있었다. 이 씨가 여성의 목소리를 처음 제대로 들은 건 법정에서다.

“남편이 동성애자인 것 같아요. 곧 이혼할 예정이고 성관계도 거의 없었습니다.”

여성은 울먹이며 말했다. 법정에는 적막이 흘렀다.

억울한 건 이 씨도 마찬가지였다. 산부인과 경력 45년인 이 씨는 12주 미만의 태아는 생명체가 아니라고,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는’ 세포라고 생각했다. 이 씨는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릴 수 있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그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한 때 가족계획위원으로 국가의 부름을 받았던 그는 30년이 지나 범법자가 됐다.


“그런 수술은 하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에 마주 앉은 여성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이달 초 서울의 한 산부인과 상담실에 잠시 적막이 흘렀다.

“선생님, 여기 해주는 병원이라고 하던데요.”

28년차 산부인과 의사 김 씨가 바로 맞받았다.

“안 한지 꽤 됐습니다.”

“여기 버스타고 오는데 1시간 반이 걸렸어요. 그냥 해주시면 안 돼요?”

여성은 중소기업에 다니는 24세 직장인이었다. 애인과 이별한 직후였다. “안 만나주면 죽이겠다”는 남자친구를 겨우 떼어놓았을 때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선생님, 수술 안 하면 제 인생 망해요. 돈도 없고 집도 없어요. 무조건 지워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5년 전까지만 해도 김 씨는 낙태수술을 했다. 일명 ‘낙태의사’였다. 한 달에 20~30명이 왔다. 사연 없는 여성은 없었다. 이날 찾아온 환자도 다르지 않았다. 김 씨가 상담실 모니터 화면을 보며 말했다.

“5주차네요. (화면 속 동그란 점을 가리키며) 이게 아기예요.”

“부탁이에요. 선생님. 지워주세요.”

이 순간이면 김 씨는 늘 고민에 빠진다. 낙태수술 비용은 임신기간이 1주일 길어질 때마다 보통 10만 원씩 늘어난다. 5주차면 최소 50만 원, 10주차면 100만 원 이상 받는다. 출산 환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무시하기 어렵다. 김 씨는 마주 앉은 여성에게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조금 더 생각해보세요. 엄마가 된 여성들은 후회하지 않아요.”

5년 전, 양손에 오렌지 주스를 가득 든 채 김 씨를 찾아온 여성이 있었다. 오래 전 낙태를 해주지 않고 돌려보낸 환자였다. 이혼을 앞두고 임신했던 이 여성도 처음 상담실에 왔을 땐 낙태하겠다는 뜻이 확고했다.

“이혼은 이혼이고 아이의 생명은 별개”라는 김 씨의 말에 여성은 발길을 돌렸다. 두 달쯤 뒤 그는 김 씨를 다시 찾았다.

“선생님, 이혼서류 접수했어요. 제발 수술해주세요.”

“임신 13주가 넘어 위험합니다. 못 해줘요.”

다른 병원에서 얼마든 낙태할 수 있을 텐데 두 달 가까이 아이를 뱃속에 간직했다면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이라고 김 씨는 생각했다.

3년 후 김 씨를 다시 찾은 여성은 “그때 말려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여성은 이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김 씨는 20년 넘게 낙태수술을 하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본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수술대에 누워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성들을 보며 내가 정말 이 사람을 돕고 있는지 스스로 묻곤 했다. 김 씨가 수술을 거부하자 결국 출산한 뒤 아이를 입양 보낸 20대 초반의 한 산모는 “최소한 아이에게 살 기회를 줬다”며 위안 삼았다고 한다.

이달 초 “생각해보라”며 돌려보냈던 24세 직장인은 2주 만에 김 씨의 상담실을 다시 찾았다. 여전히 단호했다.

“더 커지기 전에 수술 받고 싶어요. 더 커지기 전에….”

김 씨의 대답도 그대로였다.

“아이 낳은 여성은 대부분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우면 두고두고 괴로울 거예요.”

여성은 상담실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문을 열고 나가려다 고개를 돌려 물었다.

“선생님은 따님이 있으세요?”

“….”

“따님이 저 같은 상황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피임 교육 잘 시킬 겁니다.”

“저도 피임했는데 임신한 거예요. 선생님은 따님한테도 낳으라고 하실 건가요?”

대답을 원하는 듯 잠시 기다리던 여성이 상담실 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김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문밖에서 간호사가 환자를 호명했다. 상담실로 향하는 발자국 소리가 문 앞에서 멈춘 뒤 몇 초가 흐르도록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지방에서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28년 경력의 의사 박 씨는 상황을 직감했다. 상담실 문을 쉽게 열지 못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비슷한 처지다.

“어떻게 오셨어요?”

앳돼 보이는 여학생 한 명이 상담실 의자에 앉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함께 들어온 중년 여성이 의자를 끌어와 옆에 앉았다.

“저희 애가 일주일 집에 안 들어온 적이 있어요. 그래도 돌아와서 다행인줄 알았는데….”

여학생은 헐렁한 맨투맨 티셔츠 차림이었다. 배 부분이 동그란 모습이었다. 열일곱 살의 임신부였다.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얘가 가출해서 친구 집에서 지낼 때 남학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어요.”

박 씨는 모녀가 병원에 온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았다.

“이 수술 원래 불법인 건 아시죠? 근데 성폭행으로 확인되면 수술해도 법적으로 괜찮아요. 일단 경찰에 신고하시고….”

“안 돼요, 선생님!”

내내 울먹이던 엄마는 단호한 목소리로 막아섰다.

“성폭행으로 확인 받으려면 수사 받고 뭐 하고 몇 달 걸리잖아요. 엊그제 갔던 병원에서 성폭행 판결문 없으면 수술 안 해준다고 해서 그냥 나왔어요.”

여학생은 임신 18주차였다. 성폭행 피해를 알리기 두려워 임신 3개월이 지나서야 엄마에게 털어놨다. 수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여러 산부인과를 전전하고 있었다. 여학생은 불안한 듯 쉬지 않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긁었다. 박 씨는 한숨이 나왔다.

“올라가세요.”

수술은 30분 만에 끝났다. 수술대에서 내려온 여학생은 몸을 휘청거리다 엄마에게 기댔다. 박 씨는 진료실을 나서는 모녀를 바라보며 대기실을 향해 말했다.

“다음 분 들어오시라고 해요.”

배가 볼록 나온 28세 여성이 상담실로 들어섰다. 한 눈에도 임신부였다.

“6개월이 지났는데 이제와 중절수술을 받겠다고요? 지금까지 뭐 했어요?”

“아이가 있으면 남친이 못 떠날 줄 알았는데 끝까지 저랑 헤어지겠대요.”

“아가씨는 뱃속 아이가 어떤 존재에요? 남자친구 잡지 못한다고 버려도 되는 물건은 아니죠.”

여성은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다 들릴 듯 말 듯 중얼거렸다.

“아빠가 없는데 어떻게 해요. 두 시간 걸려서 왔는데, 다른 곳도 모두 안 된다고만 하고….”

여성은 인사 없이 상담실을 나갔다. 박 씨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다른 병원을 가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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