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혁명의 어머니’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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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1일 김정은 리설주 부부가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는 모습. 국정원은 리설주가 2월 셋째를 출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28일 밝혔다.
올해 1월 1일 김정은 리설주 부부가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는 모습. 국정원은 리설주가 2월 셋째를 출산한 것으로 보인다고 28일 밝혔다.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미사일보단 리설주가 더 높이 떴다.

북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상공을 가로지른 날, 네이버에선 오후 늦게까지 리설주가 실시간 인기 검색어 1위에 올라 있었다. 북한 미사일은 2위.

사람들이 리설주가 2월 셋째를 낳았다는 소식에 더 큰 관심을 보인 것이다. 남쪽 인터넷을 수시로 살필 김정은이 검색어 순위를 보며 “역시 내 아내 인기는 식을 줄 몰라. 앞으로 이미지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지”라며 즐거워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정은 우상화와 더불어 설주는 머잖아 ‘혁명의 어머니’로 등극해야 할 몸이다. 혁명의 어머니는 성녀(聖女)여야 한다. 정은과 만나기 전 딴 남자와 손잡은 과거조차 없어야 한다.

설주는 20세 때인 2009년부터 정은과 동거를 시작했다. 이때부턴 문제될 순 없지만 그 전이 문제다. 설주는 북한 최고의 예술 인재 양성학교인 금성학원에서 최고의 ‘퀸카’였다. 본인이 아무리 뿌리쳐도 남자가 줄줄 따라다녔을 것이다. 더구나 금성학원의 연애 풍조는 다른 학교에 비해 훨씬 자유롭다.

금성학원 시절의 설주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동창들이다. 평양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옆에 있는 금성학원은 11세부터 전국에서 인재를 뽑아 9년 동안 성악과 기악을 훈련시킨다. 함께 사춘기를 보냈고 졸업 후에도 같은 예술단에서 일하다 보면 서로의 사생활은 너무 잘 알 수밖에 없다.


오랜 친구였던 설주가 갑자기 정은의 간택을 받았을 때 동창들은 불행히도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질투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들은 “설주가 연애하던 남자친구 있었잖아. 자격도 안 되는 얘가 말이 돼” 하며 서로 수군거리다가 급기야 증거사진까지 돌렸다고 한다. 재빨리 태워버려도 시원찮을 사진을 돌려본 ‘죄’로 이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게 딱 4년 전 2013년 8월 말 벌어진 은하수관현악단과 왕재산음악단 예술인 9명이 처형된 사건이다. 당시 이들이 ‘포르노를 찍었다’라느니 “‘리설주도 우리와 똑같이 놀았다’고 말해 죽었다” 등의 설이 돌았지만, 실상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사진 때문에 죽인다곤 할 수 없으니 부화타락했다(성적으로 문란했다)는 죄를 잔뜩 씌웠다.

내막을 잘 아는 탈북민에 따르면 문제의 사진은 설주가 학생 시절 남자친구와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옆 잔디밭에서 어깨를 감싸고 찍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 사진 한 장이 순결하지 않다는 증거가 될 순 없지만, 성녀에겐 딴 남자에게 가슴 설렜던 과거 따윈 없어야 했다.

가뜩이나 설주 동창들을 주시하던 당국은 사진의 존재를 알아챘다. 설주와 친구들이 가수로 있던 은하수관현악단에 중앙당 간부가 내려와 공식적인 회의에서 3차례 정도 경고를 했다고 한다.

“설주 동지는 이제 일반인이 아니다. 그와의 모든 기억을 지우고 입에도 올리지 말라.”

한편으론 단원들을 은밀히 불러 문제의 사진을 누가 퍼뜨렸고, 누가 봤는지 캐기 시작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도 처벌받을 게 뻔한 상황이라 이들은 한결같이 “그런 사진은 본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하지만 집요한 추궁에 결국 실토한 사람이 생겼다. 원본 사진과 돌려본 사람의 이름도 줄줄 나왔다. 북한은 이들을 체포한 지 불과 사흘 뒤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문화예술계 간부 및 종사자 수천 명을 모아 총살했다. 집행관은 “부화타락한 인간들이 감히 혁명의 최고 수뇌부에 대해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처형장 맨 앞줄엔 악단 동료들을 앉혔다. 말뚝에 묶인 9명에게 1인당 90발씩 AK-47 자동소총 점발사격이 가해졌다. 사형수 중 가장 나이 어린 연주자 청년은 스무 살을 갓 넘겼는데, 청진에서 평양에 뽑혀온 지 얼마 안 돼 죽임을 당했다.

총소리가 멎었을 때 앞에 앉은 여가수 중 오줌을 지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한다. 집행관은 앞줄부터 일어나 말뚝 주변을 빙 돌게 했다고 한다. 90발을 맞으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게 된다. 며칠 전까지 함께 웃던 친구와 동료의 피와 살점을 밟으며 그들이 느꼈을 공포를 글로 설명할 수 있을까. 김정일은 유부녀 성혜림과 자신의 관계를 발설한 연예인들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 격리했지만, 정은은 설주의 과거를 피로 지워 땅에 묻었다.

혁명의 어머니의 삶도 만만치는 않다. 인기 가수였던 설주는 지금 열심히 출산 중이다. 28세에 벌써 자식이 3명이다. 성별이 확인된 것은 ‘주애’라는 딸(둘째)뿐이다. 국가정보원은 29일 첫아이가 아들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그렇더라도 왕조를 물려주려면 예비 ‘왕자’ 한 명은 더 있어야 한다. 올해 낳은 셋째의 성별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설주에게 아들이 있다면 발편잠은 잘 수 있을 것 같다. 딸만 낳았다면 아들 못 낳은 왕비는 반드시 밀려난다는 역사가 되풀이될 뻔했다. 김정일의 세 번째 여자의 아들인 정은이야 말로 누구보다 설주가 아들을 많이 낳길 기대할 것 같다. 설주는 앞으로 몇 명을 더 낳아야 할까.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미사일#리설주#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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