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영조의 장수 비결은 배꼽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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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는 배꼽 쑥뜸으로 소화기 질병을 예방하는 데 효과를 봤다고 한다.
영조는 배꼽 쑥뜸으로 소화기 질병을 예방하는 데 효과를 봤다고 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위장이 불편해 오랫동안 한방 치료를 받았던 지인이 교도소에서 2년여를 보내고 찾아왔다. 걱정과는 달리 얼굴빛이 너무 좋았다. 오히려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속도 편안하게 잘 보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침마다 따뜻한 물을 페트병에 넣어 배를 따뜻하게 했더니 감기도 배탈도 전혀 없었다는 얘기였다. 필자가 예전에 들려준 영조의 건강 유지법을 듣고 그대로 실천한 덕택이었다.

영조는 조금만 찬 곳에 앉거나 찬 음식을 먹으면 배탈이 나는 체질이었다. 영조 원년 영조가 갑작스러운 복통을 호소하자 어의 권성징은 “여염 사람들이 복통이 생기면 배꼽에 소금을 채워 넣고 쑥뜸을 떠 효험을 본 자가 많다”며 뜸을 뜰 것을 진언한다. 어의가 말한 연제법(煉臍法)은 일종의 간접구(間接灸)로, 쑥뜸과 피부 표면 사이에 소금이나 약재를 넣어 열기가 피부에 직접 닿아 상처를 내거나 고통을 주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후 영조는 배꼽 쑥뜸으로 소화기 질병을 예방하는 데 톡톡한 효과를 봤다. 자신의 건강 약점이 소화기의 냉증에 있다는 것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대처법을 찾은 것. 혹자는 영조가 조선시대 다른 왕들보다 갑절이나 장수한 비결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동의보감은 배꼽을 데우는 방법으로 몇 가지를 제시한다. 소금이나 회화나무 껍질로 배꼽을 덮고 난 뒤 그 위에 쑥뜸을 뜨는 방법, 부자 등 따뜻한 기운의 약으로 고약을 만들어 붙이는 방법, 배꼽을 약쑥으로 덮는 방법 등이다. 동의보감은 이들 치료법의 기전과 효능까지 적고 있다.

‘배꼽 줄은 마치 과일이 나뭇가지에 달려 있을 때 양분이 과실 꼭지를 통하는 것과 같다. 배꼽에 더운 김을 쏘여 꼭지를 튼튼하게 하는 것은 풀과 나무에 물을 주고 흙을 북돋아 주면 잘 자라는 것과 같다. …냉대하와 월경이 고르지 못해 임신하지 못하는 것을 치료한다.’


배꼽에 뜸을 뜨고 더운 김을 쏘이는 것은 배꼽이 원래 차가운 곳이라는 한의학적 음양론에서 비롯된 처방이다. 배꼽은 자궁 속 태아에게 영양분을 보내는 유일한 통로이자 차가운 음기가 모이는 축이다. 따라서 이곳에 온기를 보태야 몸이 균형을 찾고 건강해진다는 것.

중국 청대 최장수 태후 중 한 사람인 서태후가 건강을 위해 선택한 처방 중 하나가 배꼽 고약이었다. 녹각, 당귀, 당삼, 천초 등의 약재를 졸여 만든 ‘보원고본고’라는 고약을 항상 붙이고 다니며 배를 따뜻하게 유지한 것.

배꼽을 인체의 중심이자 건강의 핵심으로 본 시각은 동서양이 일치한다. 의학에 정통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인체도는 인체의 중심이 배꼽이란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로마의 건축가인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구현한 것. 구약성경 욥기 40장 16절 또한 ‘이제 보라. 그의 기력은 허리에 있고 힘은 그의 배 배꼽에 있느니라’라고 했다. 동의보감에도 유사한 기록이 있다. ‘팔을 위로 올리고 땅을 디디고 서서 줄로 재보면 중심이 바로 배꼽에 해당된다.’ 월인석보에는 배꼽을 배의 한복판이라는 뜻의 ‘빗복’으로 적고 있다.

매일 홍수처럼 많은 건강상식이 쏟아지고 있지만 건강의 핵심은 많은 지식을 쌓는 게 아니라 자기에 맞는 섭생을 알고 실천하는 데 있다. 습하고 더운 여름철 찬 음식과 찬 음료의 유혹을 뿌리치고 배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생명시간은 조금 더 늘어날 것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영조의 장수비결#쑥뜸#소화기 질병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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