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의 프리킥]트럼프 탄핵정국과 한미 정상회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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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논설위원
허문명 논설위원
미국에선 한 달 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물으면 “가능성이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지금은 분위기가 확 다르다. 한 한국인 교수 말이다. “탄핵은 더 이상 금기어도 아니고 이제는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대놓고 말한다.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어 어렵다고 하는데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여론이 악화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미국은 한국처럼 다시 대선을 치를 필요가 없다. 펜스 부통령 체제가 더 나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CNN 등 미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율은 30%대로 추락했고 “임기를 못 채울 것”이라고 말한 응답자도 40%대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일부 의원들도 탄핵론에 공감하는 의원들이 있다고 전한다.

외교안보정책 밑그림 모호

많은 학자들 진단대로 현 국제정세는 ‘초불확실성의 시대(Age of Hyper-uncertainty)’다. 미국 탄핵정국까지 겹쳐지니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미국이 계속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로 갈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로 상징되는 국제주의로 복귀할지 자체도 불투명해졌다. 중동의 종파분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고 유럽엔 ‘우리 운명은 유럽인 스스로’ 독자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으며 아시아는 미중이 포위하며 각축하는 변형된 냉전구조가 온존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양국 국내 사정상 알찬 결실을 맺기는 힘들어 보인다.

우선 한국은 외교안보팀 구성조차 못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상처를 많이 입은 데다 북핵 전략 부재를 드러냈고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남북회담 전문가 이상철 1차장도 경험 부족으로 무게감이 떨어진다. 안보실 2차장도 공석이다. 안보실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고 누락 파문 같은 아마추어적 업무처리로 명예와 사기가 생명인 군심(軍心)까지 흔들었다. 안보 위기는 높아 가는데 국방, 통일장관 후보자는 발표조차 되지 않고 있다.


외교안보 정책의 밑그림이 뭔지도 모호하다. 청와대 기류를 보면 최근 10여 년간 벌어진 국제정세의 본질적인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함이 떨어져 보인다. 미중 패권이 각축하는 가운데 한국이 균형자적, 중간자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다. 사드 문제 본질은 미중 경쟁시대에 한국이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국내가 아닌 국제 문제다. 1, 2년 안에 사드 배치를 둘러싼 지정학적 구도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 결국 어느 순간 배치냐 철회냐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모호한 태도를 취할수록 한미관계 불확실성만 커진다.

참을 인(忍)자 세 개를 마음속에

미국도 정상회담 준비가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동아태 차관보와 주한 미 대사가 공석이고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관료들이 여전히 한반도 문제를 맡고 있다. 워싱턴에선 탄핵에 관심이 쏠리면서 한미 정상회담은 뒷전이며 의제 사전조율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국제적인 석학 아이컨그린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얼마 전 한국에 “트럼프 정부 정책엔 인내심을 갖고 대하며 외환보유액을 충분하게 쌓아 금융시장을 견고하게 만들고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라”고 조언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눈높이를 낮춰 세부 각론보다는 동맹관계 재확인, 북핵 공동대응, 경제협력 강화 같은 총론을 확인하는 회담이 되었으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갈 때 좀 더 길게 보는 여유와 참을 인(忍)자 세 개를 마음속에 새기고 갔으면 싶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트럼프 탄핵정국#한미 정상회담#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북핵 전략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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