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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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와 함께 하는 대한민국 헌법 이야기]제10조

허완중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허완중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할 것을 강조했다. 인간을 목적이 아니라 생산과 경쟁의 수단으로 몰아넣는 작금의 물질주의 풍조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최근에는 태국의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장애아가 호주인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절대적인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기 위한 여성의 소중한 몸이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셈이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는 헌법 제2장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실현하기 위함에 있다는 의미이다.

국민 개개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자유롭게 개성을 신장하고 최소한의 물질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실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헌법의 이념적 출발점이자 핵심적 가치이다.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 보장은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가치가 있거나 목적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더욱 잘 실현할 수 있는 도구의 기능을 가질 뿐이다.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국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국가가 정당성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이성에 기초하여 인식하고 행동하며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 가는 유일한 존재이다. 인간은 개개인이 하나의 자율적인 인격체이므로 모두 동등하게 존중을 받아야 하는 목적적인 존재이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도소나 정신병원에서는 수형자의 교화와 사회 복귀,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만 강제수용이 허용된다. 범죄자를 엄히 처벌하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일반인에게 경각심을 주거나 환자를 둔 가족의 편안한 삶을 위해서 강제수용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을 하거나 밤샘수사를 하는 것도, 제품을 더 생산하기 위해 종업원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도 모두 사람을 수사나 돈벌이의 수단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보장은 물질적인 최저생계의 보장에서 출발한다. 개인이 스스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면 인간의 존엄은 구두선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는 자력으로 살아갈 수 없는 국민에게 물질적 급부를 통해 최저생계를 보장하여야 하며 세금을 부과할 때도 늘 국민의 생계능력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의 일은 아니지만 독일의 경우 망명 신청을 한 외국인에게 독일 국민에게 지급하는 최저생계비보다 적은 액수의 생계비를 지급하는 것에 대해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차별대우라고 판단한 것은 인간 존엄성의 헌법적 의미와 관련해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준다.

존엄사의 문제도 인간의 존엄과 관련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 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거나 남은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존엄하게 죽는 길을 선택하는 것을 ‘존엄사’라고 한다. 실제로 치료 과정에서 식물인간이 된 어느 할머니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자녀들이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대법원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을 허용하는 판단을 하였다.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에 미리 생명 연장을 위한 의학적 조치를 하지 않도록 당부하였고 의학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는 객관적 진단이 내려져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조치를 중단하였다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죽음의 과정에서 본인의 확고한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다른 사람의 치료를 위한 장기적출 역시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헌법에서도 가장 앞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가장 낯설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개념이기도 하다. 국가가 세우는 모든 정책과 활동은 그 주파수를 “인간의 존엄성”에 민감하게 맞추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선언이 헌법의 최고 이념이자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허완중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프란치스코 교황#존엄성#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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