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자사고 폐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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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13명이 당선되었습니다. 대다수 진보 교육감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줄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자사고의 뿌리는 2002년 고교평준화제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자립형사립고에 있습니다. 이를 강화한다면서 2010년 자사고로 전환한 것입니다. 전국 49개교 가운데 25개교에 대해 재지정 여부가 8, 9월에 결정됩니다. 지정 기한을 연장할지, 지정을 취소할지는 교육감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자사고는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을 부추기고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어 사실상 학생 교육권을 침해하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교육 소비자 입장에서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두 전문가의 의견을 소개합니다. 》



▼우수학생 독점하는 자사고 없애야 일반고 산다


김성천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
김성천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
자율형사립고 탄생의 핵심 논리는 다음과 같다.

“고교 평준화가 고등학교를 획일화시켰다. 평준화를 위해 사립학교 역시 통제가 불가피하다. 온갖 규제와 통제로 인해 사립학교의 자율성과 창의성은 죽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 사학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아야 한다. 대신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받는다. 등록금만으로 운영되는 자사고는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을 받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궁극적으로 고교의 다양한 발전 모델이 만들어질 것이다.”

논리는 그럴듯하지만 현실에서는 처절히 실패했다. 이제는 자사고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일반고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사고 정책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사고는 계층 통합을 저해한다. 세간에는 ‘특목고는 성골, 자사고는 진골, 일반고는 육두품’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자사고의 등록금이 일반고에 비해 2.5∼3배 이상 비싸다. 가난한 학생이 사회배려대상자 전형으로 자사고에 들어갔다고 해도 버티기란 쉽지 않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교육정보연구원의 서울교육종단연구 1, 2차 연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일반고의 경우 가구소득이 400만 원 미만이 48.1%, 600만 원 이상이 23.2%인 반면 자사고는 400만 원 미만은 27.2%, 600만 원 이상은 44.8%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소득 수준이 자녀의 학교를 결정짓는 것이다. 교육을 통한 사회 통합은 점점 달나라 이야기가 되고 있다.

둘째, 일반고 슬럼화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유기홍 국회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자사고가 도입되기 전인 2009년 서울지역 일반고 신입생 중 중학교 내신성적 상위 20% 학생 비율은 21.9%였으나 2012년에는 18.1%로 감소했다. 반면 내신성적 하위 20%인 학생 비율은 2009년 14.1%에서 2012년 18.5%로 늘어났다. 특성화고 진학에 실패한 중하위권, 특목고나 자사고 진학에 실패한 상위권 학생이 막차처럼 일반고를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 자사고는 학생 선발권을 갖는다. 정부가 일반고 살리기의 일환으로 학교당 몇 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하지만 근본적인 게임의 룰을 바꾸지 않는 한 자사고를 따라잡기란 요원하다.

셋째, 자사고는 공교육을 자극하고 발전시키는 모델이 될 수 없다. 자사고는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갖고 있는데, 이는 국영수의 강화로 이어졌다. 자사고의 건학이념은 결국 입시 명문고이다. 일반고가 교육과정을 정함에 있어 모델로 삼을 만한 자사고도 극히 적다. 자사고의 입시 성과가 좋게 나오는 것은 애초에 일반고보다 우수한 학생을 받았기에 나타난 결과다. 그러니 일반고에선 자사고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사고 정책을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대신 일반고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수한 학생들의 분산 효과를 바탕으로 일반고 혁신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승산은 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들어온 학생들을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학교 효과’ 모델이 필요하다.

자사고가 일반고를 견인하는 모델로서 기능하려면 ‘선발 효과’를 포기하고 좋은 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예컨대, 혁신학교는 선발권에 집착하지 않는다.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 혁신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에 노력을 기울인다. 단위학교 실천성과를 인근의 학교와 나눈다. 상생과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고등학교를 살릴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는 교육과정 클러스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평준화 A지역 내 학교들은 로봇기초, 국제정치, 스페인어 교과목을 한 개씩 개설한다. 해당 분야의 진로나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은 자신의 학교가 아니더라도 인근의 학교에 가서 개설된 정규 교과목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개별 학교가 학생들의 진로를 고려하여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만들고 이를 지역에서 연계한다면 특목고나 자사고를 만들지 않아도 진로 교육과정 잔치를 열 수 있다. 단위학교 교육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이를 대학교에서 의미 있게 평가한다면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 수 있다.

정책을 쏟는 에너지의 총량은 제한되어 있다. 에너지의 방향을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

김성천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

※필자는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을 지냈다.






▼걸음마 단계인 자사고 폐지 주장은 시기상조


1973년 시행된 고교평준화정책은 학생들의 입시 지옥을 해소하고 사교육비를 줄이는 장점이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친 획일화로 경쟁의 원리를 없앰으로써 전체적으로 고교가 하향평준화하는 문제점이 생겼다.

역대 정부들은 이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고교평준화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학생들의 다양한 학업능력, 장래희망, 적성, 취미 등에 따라서 직업학교인 특성화고나 예술고, 체육고, 과학고, 외고 등을 선택하여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MB정부가 자율형학교제도를 도입한 첫째 이유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이유는 사립학교의 설립 취지와 건학이념을 존중해주고,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는 학교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였다. 세계의 모든 사립학교는 대부분 학생선발권, 교육과정운영권, 수업료 책정권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정부가 사립학교에 교원인건비 등을 지원해주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립학교는 중학교 무시험제도와 고교평준화정책으로 공립학교와 차이가 없다. 지난 정부에서 자율형학교제도를 도입한 것은 부분적으로나마 학교에 사립학교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사학의 자율성을 허용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자율형사립학교는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 일반고의 3배 범위에서 수업료를 받는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로부터 귀족학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자사고의 내부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교육청으로부터 교원의 인건비 등을 지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재정적 압박을 더 받는다. 그럼에도 자사고를 유지하려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나마 학교선택권과 교육과정의 자율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학교를 잠자는 곳이 아닌 공부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고교평준화정책으로 학업능력과 적성이 서로 다른 학생들이 한 교실에 앉아 있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나 잘하는 학생들 모두 학교에서는 잠을 자고, 학교를 마친 후 자신의 학업능력에 따라 학원에서 공부한다. 학교가 잠자는 곳으로 바뀐 지 이미 오래다.

얼마 전 강북에 있는 한 자사고를 방문하였다. 스스로 학교를 선택하여 입학한 학생들은 학교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교사들도 밤늦게까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지를 함께 의논하고,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한다. 얼마 전 정부에서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고 했을 때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부형과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소위 진보 교육감들은 한결같이 전국 고등학교의 2.1%에 불과한 자사고가 일반고를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 같다. 자사고가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을 싹쓸이해가서 일반고가 더욱 나빠졌다는 것이다.

서울의 자사고는 지난해까지 중학교 내신 50% 이내 학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신입생을 선발했다. 그러나 대부분 자사고 학생들의 내신성적은 일반고에 진학한 학생들과 비교해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 자사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한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교사들도 의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왔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내고 있을 뿐이다. 굳이 좋은 학교를 찾아 강남이나 목동으로 이사를 가는 강북 학생의 비율도 훨씬 줄었다고 한다.

자사고는 생긴 지 3, 4년밖에 되지 않았다. 평가를 통하여 자사고의 성공 여부와 존폐를 결정하기에는 너무 시일이 짧다. 어떤 학교이든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여 성과를 내는 데에는 보통 10여 년은 걸리기 때문이다.

자사고는 고교평준화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사립학교의 자율성을 신장하고 학부형과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을 넓혀주며, 학교를 잠자는 곳이 아닌 공부하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도입되었다. 교육정책이 교육감의 정치적 성향이나 일부 사람의 반대 때문에 바뀌거나 폐지되어서는 안 된다.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은 여당이나 야당 혹은 보수와 진보 등의 정치적 성향이나 교육감의 개인적 소신에 좌우되거나 치우쳐서는 안 된다. 문제점을 점진적으로 개선해가면서 국민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 함께 일관성 있게 추진해가야 한다. 자사고도 마찬가지다. 폐지하지 말고 존속시켜야 한다.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

※필자는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단 부위원장과 이명박 정부 대통령교육과학 문화수석비서관을 지냈다.

오피니언팀 reporter@donga.com
#6·4지방선거#교육감#자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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