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성진]마음을 잡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잡는 것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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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검사 출신의 경력 짧은 형사법 교수가 학교법인 이사회에서 처음 대학의 총장으로 선임되었을 때 교수들은 반대 의사를 표명하였다. 벽보도 붙였다. 교수협의회에 출석하여 공약을 발표해 보라는 요구에 불응하였다는 것이 표면상 이유였다. 총장 취임을 승낙한 것을 후회하였지만 이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교수 대표들을 만나보자고 하였다. “나는 학교 행정을 깊이 모른다.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가며 한번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학교 부근 보통 수준의 식당에서 증인 격인 법대 교수 한 사람만 데리고 나가서 그 대표들을 용기 있게 만난 결과는 바로 대학의 중흥 발전을 위한 착한 출발, 아름다운 시작으로 연결되었다.

물론 보직교수들을 골고루 발탁하여 매일 얼굴을 맞대고 많은 일을 하게 했다. 그러나 현대적 감각의 학교상징표지(UI) 제정이나 종합정보시스템 구축 같은 중요한 결정은 총장의 의지와 책임으로 강행한 쪽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필자의 경험이기도 한 이런 이야기를 지금 새삼스럽게 꺼내는 것은 국정이든 일개 대학의 운영이든 모든 조직의 행정에는 공통되는 원칙과 슬기가 숨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함께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것을 제도의 개혁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냐, 단순한 운영 개선으로 족할 것이냐가 흔히 논의되지만 그중 어느 하나의 방법만이 만능열쇠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우리의 경험칙에 더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세월호 사고의 후속 조치로, 해양경찰청의 해체와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의 기능 축소, 국가안전처의 신설 등을 포함한 정부조직 개편과 민간 출신 전문가의 광범한 공직 임용,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 대상 기관 3배 이상 확대 등 획기적 방안이 제시되었다. 물론 이에 대하여도 시스템과 부처의 문패를 바꾸는 것은 일종의 미봉책이며, 조직의 전문 역량 강화와 함께 국정 철학의 기조가 바뀌는 것이 정상화의 선결과제라는 비판이 이미 나오고 있는 터이기도 하다.

문제는 국가 대개조의 의지로 시작한 위의 조치가 민간인도 참여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정부 조직 개편이나 특별법 제정은 국회의 입법 조치가 뒤따라야 하므로 그 실현이 기대하는 것만큼 간단치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박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 대한 신뢰와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 정부 당시 고양과 남양주를 잇는 사패산 터널 구간 공사와 경부고속철도의 천성산 터널 공사가 환경단체와 지율 스님의 단식 등 반대로 2년 또는 6개월간 중단됨으로써 5000억 원대 및 145억 원의 추가 공사비가 들었던 예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이른바 쇠고기 파동에 따른 촛불시위에 적극적으로 대응치 못했던 사례 등은 정부의 지나친 온건책이 오히려 국민들의 걱정을 자아낸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헌법상 행정부 수반이기도 한 박 대통령이 현실 정치 및 관료들이 이끄는 행정 현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원론적 초연함의 발걸음만 지속한다면 보통의 국민들로서는 이를 오히려 불필요한 강경 자세 또는 국정 기조의 모드로 받아들일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라와 사회의 기강을 세우기 위하여 법의 집행은 강경해야 하지만 정치는 부드러움을 아울러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는다. 눈물을 흘리는 것을 비난하기보다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을 정부의 무능과 국가 기능의 부재로 비판하는 사람도 많은 현실에서 국가 대개조의 의지를 표방하면서 일련의 개혁 조치를 새 국무총리에게 맡겨 버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어머니 같은 부드러움의 리더십이 필요할 때다. 사람의 마음을 잡는 것이 모든 것을 잡는 것이다. 신뢰와 안전, 균형과 평화가 정상화의 기준이 되어야만 한다.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정부조직 개편#박근혜 대통령#전문가#퇴직 공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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