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지친 도시 장항에 ‘젊음’이 피었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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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데이 히트 시킨 ‘홍대 앞 총장’ 최정한, 선셋페스티벌 판 벌이다

‘홍대 앞 총장’으로 불리는 최정한 공간문화센터 대표는 “홍대 앞 창조 인력이 지역의 아날로그적 공간과 만나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홍대 앞 총장’으로 불리는 최정한 공간문화센터 대표는 “홍대 앞 창조 인력이 지역의 아날로그적 공간과 만나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일몰을 뜻하는 ‘선셋(sunset)’이 문제였다.

7월 초. 50대 남자 둘이 70대 이장 할아버지들에게 불려가 어린애처럼 혼이 났다. “어떤 놈이 기획했는지 모르겄지만, 안 그래도 지는 해 신세인 마을에 ‘아예 망해버리라’고 불 지르는 거 아녀?” 두 남자는 머리만 조아렸다. “하지만 루비콘 강에 주사위는 던졌는데 어쩌겄어. 도와줘야지. 그래도 ‘선셋’인가는 마음에 들지 않아.”

두 남자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주사위 먼저 던지고 강을 건너는 건데….’ 하긴 맞는 말이었다. 인구 1만 명에 불과한 충남 서천군 장항읍에서 젊은이들이 참가하는 실험적 예술축제 ‘선셋장항페스티벌’을 개최하기로 결정한 순간, 주사위는 던져졌고 루비콘 강을 건넜다 . 축제의 총감독을 맡은 최정한 공간문화센터 대표(55)와 담당 공무원 이대성 서천발전전략사업단장(51)은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어르신들도 도와주신다는데 제대로 ‘장항습격사건’을 벌여야 하지 않겠어?”

○ 홍대 앞 총장과 시골 공무원의 만남

이 단장이 최 대표를 찾아 서울 홍익대 앞에 나타난 건 2010년 초. 막걸리집에 마주 앉아 이 단장이 최 대표에게 불쑥 얘기를 꺼냈다. “장항을 살려주세요. 장항에서도 클럽 파티 같은 걸 하고 싶습니다.” “장항이라면, 서천군에 있잖아요? 그렇게 조용한 곳에서 클럽 파티를 하자고요?” 느닷없는 요구에 놀라면서도 최 대표는 조금씩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최 대표는 홍대 앞을 클럽 문화의 메카로 만든 주역이었다. ‘홍대 앞 총장’으로도 통한다. 클럽 문화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계기가 됐다. 서울시는 월드컵 경기를 보러 오는 외국인들이 즐길 만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 중이었고 최 대표는 시민단체 운영 경험을 살려 히트 문화상품 ‘클럽 데이’를 만들어냈다. 2003년 사회문화계 인사와 클럽주들이 모여 클럽문화협회를 결성하면서 그가 대표를 맡았다.

하지만 이후 홍대 앞 클럽 문화는 예전같지 않았다. 인기 클럽들은 자본과 손잡고 강남이나 이태원 등지로 확장했다. 창의적인 예술가들이 설 자리는 점차 사라져갔다. 상업화하는 홍대의 클럽 문화에 무기력감을 느끼던 차에 이 단장이 장항의 클럽 파티 얘기를 꺼낸 것이다. 문득 ‘홍대 앞의 창의적인 인력이 장항에 간다면 그곳을 제2의 홍대로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장항에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아버지가 장항제련소를 다니셨어요. 당시 직원만 2000명이 넘었어요. 제련소 복장만 해도 외상을 쫙 깔 수 있었지. 아버지 월급날 어머니가 돌아다니면서 그 외상값을 다 갚아줬어요. 월급날이면 이 동네 쌀값이 들썩였다니까.”

이 단장은 최 대표에게 고향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름답게 타오르다가 서해 바다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볼 때면 활기찼던 옛 장항이 떠올라 마음이 저릿하던 차였다.

장항은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 조선의 수탈 기지로 탄생했다. 1931년 장항선의 종착역인 장항역이 세워지면서 관공서 학교 공장이 들어섰다. 1936년 장항제련소와 1937년 장항항이 완성됐다. 1930년대 초반에 세워진 미곡창고는 한반도 각지에서 올라온 쌀들로 꽉꽉 채워졌다. 도시는 번창했고 풍요로웠다. 광복 후 40여 년간 장항제련소는 도시 경제의 중심이었다. 제련소는 도끼 자루 하나도 이 지역에서 구매했다. 농민들은 휴농기인 겨울에 물푸레나무를 베어 제련소에 납품했다. 인구가 늘어 3만 명에 육박했다.

○ “공장 짓지 말고 파티 합시다”

선셋장항페스티벌에는 미술과 클럽 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다수 참가했다(위), 공장미술제가 열린 금강중공업 창고 외관(가운데), 선셋장항페스티벌의 두 주역인 이대성 서천발전전략사업단장(맨 아래 왼쪽)과 최정한 공간문화센터 대표. 공간문화센터 제공·장항=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선셋장항페스티벌에는 미술과 클럽 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다수 참가했다(위), 공장미술제가 열린 금강중공업 창고 외관(가운데), 선셋장항페스티벌의 두 주역인 이대성 서천발전전략사업단장(맨 아래 왼쪽)과 최정한 공간문화센터 대표. 공간문화센터 제공·장항=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1989년 제련소가 폐쇄됐고 장항은 활기를 잃었다. 2008년 장항역이 인근 마서면으로 옮겨가고, 한때 번창했던 장항항마저 인근 군산항에 밀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늘 북적이던 역전식당, 항구 앞 선술집은 옛말이 됐다. 젊은이들이 줄지어 빠져나갔다.

이 단장은 1981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가 군대를 다녀온 후 고향으로 돌아와 1992년 서천군 공무원이 됐다. 장항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할 때 지역에 다시 터를 잡은 것이다. 갈수록 침체되고 공동화하는 고향은 그의 마음에 빚으로 남았다.

2007년 장항을 되살릴 기회가 찾아왔다. 충남도가 지역균형발전 조례를 지정해 도 내 낙후된 지역에 발전지원금을 주기로 결정했다. 장항이 속한 서천군도 2008년부터 5년간 일정 예산을 확보했고 이 중 300억 원을 장항에 배분했다. 그는 이 예산을 기반으로 서천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서천발전전략사업단’ 단장을 맡았다.

“장항 어르신들은 건실한 공장 하나 유치하라고 하셨어요. 과거 제련소의 수혜를 받으셨기에 공장 유치가 최고라고 믿으셨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어요. 요즘 공장은 지역 경제와 융합이 안되거든요. 갑자기 떠나버리면 지역은 더욱 초토화되죠. 그저 막연하게, 해결책은 문화 예술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2010년 발전지원 예산 14억 원을 들여 1930년대 세워진 미곡창고 및 용지를 매입했다. 쓰레기나 다름없는 건물을 왜 사느냐며 비난이 빗발쳤다. “100년 가까이 된 건물이지만 기둥과 벽이 무척 튼튼했어요. 조금만 고치면 공연이나 전시, 세미나 등을 여는 공간이나 안테나숍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문득 이 단장의 머릿속에 최 대표가 떠올랐다. “팔찌 하나만 차면 여러 클럽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클럽 데이’가 매력적이었어요. 이를 기획한 분이라면 장항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클러버들, 100년 된 미곡창고를 습격하다

7월 14일 밤 미곡창고에서 펼쳐진 매직믹스쇼. 홍대 앞 클럽 DJ와 뮤지션, 그리고 수천 명의 클러버가 함께했다. 공간문화센터 제공
7월 14일 밤 미곡창고에서 펼쳐진 매직믹스쇼. 홍대 앞 클럽 DJ와 뮤지션, 그리고 수천 명의 클러버가 함께했다. 공간문화센터 제공
장항은 일몰이 아름답다. 최 대표는 여기에 주목했다. 일몰 이후 사람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면 충남, 전북 지역은 물론이고 서울의 젊은이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장항에는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간직한 낡은 부두와 공장, 창고, 여인숙이 많아요. 이 건축물에 홍대 앞의 창의적인 콘텐츠를 결합하는 거죠.”

최 대표가 서천군에 제안한 ‘선셋장항 창조사업’의 골자도 이것이다. 미곡창고와 도선장(渡船場), 옛 장항역사 등 세 곳을 거점으로 미디어아트센터, 재즈파크, 실험적 전시가 가능한 공간 등 창의적인 문화 예술의 장을 만들고, 오래된 여인숙과 빈 집 등을 옛 정서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숙소로 바꿔 사람들을 장항에 오게 한다는 것.

지난달 13일부터 22일까지 펼쳐진 선셋장항페스티벌은 그 가능성을 실험해 보기 위해 기획됐다. 공장미술제, 트루컬러스 뮤직페스타, 힐링캠프, 매직믹스쇼, 미디어아트스쿨 등으로 구성된 이 축제에 열흘간 2만여 명이 다녀갔다. 노인 인구가 대부분인 지방 소도시에 20, 30대 대학생과 작가, 클럽 DJ, 뮤지션, 그리고 수천 명의 클러버(clubber)가 모여 난장을 펼쳤다.

지역 주민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다. 공장미술제에 설치된 ‘센’ 작품을 보고 한 여성이 충격을 받아 밤에 잠을 못잔다고 토로했다. 이들이 노는 모습이 ‘소돔과 고모라’를 연상시킨다며 운영본부에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과 어울려 축제를 즐긴 주민도 많았지만 여전히 공장 유치를 주장하는 이도 적지 않다.

“주민들을 찾아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충격파를 던진 후 주민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사업의 방향을 찾아가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 앞으로 장항만의 스토리를 어떻게 부각할지, 주민들을 어떻게 참여시킬지를 고민해야겠지요.”(이 단장)

“낡고 불편한 공간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홍대 앞 창조 인력들이 지역의 아날로그 공간과 만나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이들이 이곳에서 꾸준히 활동하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장항도 제2의 홍대가 될 수 있습니다.”(최 대표)

장항=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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