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올림픽 개막식, 베이징 vs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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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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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머우(61)는 중국 5세대 감독의 대표주자이자 베를린, 칸, 베니스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 스타 감독이다. ‘트레인스포팅’으로 영국 저항문화의 아이콘이 된 대니 보일 감독(56)도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년)로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쓴 세계적 영화인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나이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쇼를 연출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장 감독에 이어 보일 감독이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의 총감독을 맡았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은 워낙 뜨르르했다. 총감독이 된 장 감독은 역대 최고 액수인 1억 달러(약 1140억 원)를 들여 나침반 종이 화약 인쇄술 등 중국의 4대 발명품에 공자 사상까지 반만년 중국사의 빛나는 순간들을 펼쳐 보였다. 성화는 역대 최장거리인 14만 km를 거쳤고, 개막식 공연엔 1만5000명이 참여했는데 이 중 9000명이 인민해방군이었다. 정부의 주도로 엄청난 인력과 자본을 동원한 최대 스케일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조용필 다음에 노래하는 격이었다. 보일 감독은 “어차피 규모로는 베이징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어깨에 힘부터 뺐다. 예산은 482억 원으로 줄이고 쇼의 내용도 영국의 근현대사로 축소했다. 최대 규모와 빈틈없는 짜임새로 사람들을 압도했던 베이징 쇼와 달리 런던 쇼는 가볍고 소란스러웠다. 셰익스피어와 ‘해리포터’ ‘메리 포핀스’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비틀스의 명곡이 흥을 돋웠다.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본드걸’로 깜짝 출연하고, ‘미스터 빈’의 희극 배우 로언 앳킨슨이 오케스트라 연주석에 끼어들자 관중은 박수치며 웃어댔다.

▷베이징 개막쇼는 중국의 체면이 달린 국가적 행사였다. 체제 옹호적인 장 감독이 연출을 맡은 건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저항적 영상미학의 보일 감독에겐 애초부터 제국의 영광을 되찾자는 애국심 같은 건 없었다. 런던 쇼는 오히려 무상의료제도 노동운동 동성애 이민자 권익 등 민감한 사회 문제를 건드려 집권 보수당으로부터 “공산국가의 수도 베이징보다 훨씬 좌파적”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영국은 마음만 먹었다면 중국에 뒤지지 않는 스케일의 쇼를 연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국왕을 본드걸로 등장시켜 스스로를 유머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올림픽 개막식#베이징#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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