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내 인생을 바꾼 사람]일상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발레 수업임을 깨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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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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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레리나 강수진의 마리카 선생님

외국에서는 강수진에게 ‘잇(it)’이 있다고들 한다. 그것이 끼든, 카리스마든 무대에서 사람을 사로잡는 뭔가를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가 속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15∼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까멜리아 레이디’를 공연한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외국에서는 강수진에게 ‘잇(it)’이 있다고들 한다. 그것이 끼든, 카리스마든 무대에서 사람을 사로잡는 뭔가를 타고났다는 것이다. 그가 속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15∼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까멜리아 레이디’를 공연한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 “오, 주 쉬 파티게(Je suis fatigue´·프랑스어로 피곤하다는 뜻).” 학교에서 함께 집으로 돌아온 마리카 선생님은 몸을 내던지듯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모나코왕립발레학교 교장 마리카 베소브라소바(1919∼2010)를 학생들은 ‘딕타퇴르’(dictateur·프랑스어로 독재자)라고 불렀다. 까다롭고 불같은 성격에, 강인한 러시아 여성답게 엄격하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밖에서의 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면 영락없는 할머니로 되돌아왔다. 집안일은 모두 강수진(45·슈투트가르트발레단 프리마 발레리나)의 몫이었다. 1985년, 발레리나 수진은 ‘마리카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보통 사람들의 삶을 배워 가고 있었다. 그의 인생수업 1막이었다. 》
○ 보통의 삶

주위의 많은 사람이 뉴욕에 남으라고 했다. 1985년 1월, 그해만 특별히 미국 뉴욕에서 열린 로잔국제발레콩쿠르에서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1등상을 탄 직후였다. 콩쿠르 심사위원들이나 무용 감독들은 그에게 뉴욕에 남아서 더 공부해 뉴욕시티발레단에 가라고 했다. 그때 마리카 선생님이 강수진을 붙잡았다. “너는 아직 덜 컸다. 여기 있으면 너는 살아남기 어려울 거다. 나랑 같이 1년을 더 살아 보자.”

혜안(慧眼)이었다. 열다섯 나이에 모나코왕립발레학교에 왔을 때도 그랬고, 열아홉에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했을 때도 그랬다. 강수진이 가장 힘들어했던 건 다른 사람과의 실력 차라기보다는 처음 가본 곳에서의 일상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낯선 음식, 낯선 언어, 낯선 거리, 낯선 사람.

오후 9시면 어김없이 전체 건물에 불이 꺼지는 왕립발레학교 기숙사에서 수진은 막막했다. 지금 여기 와서 뭐 하고 있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까마득하기만 했다. 컴컴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면 울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자신을 한국에서 발탁한 마리카 선생님을 찾아갔다. 손짓 발짓 해가며 뜻을 전했다. 너무 힘들다고,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입에서 나온 말은 몇 마디에 불과했지만, 마리카 선생님 또한 몇 마디밖에 말하지 않았지만, 수진은 그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널 도와주마. 가지 마라.’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따뜻했다.

“미국에 남지 말라는 마리카 선생님의 말씀이 결과적으로 맞았어요. 미국 생활은 유럽 생활과는 또 다르잖아요.”

수진은 마리카 선생님이 자신의 집에서 같이 생활을 하도록 한 첫 제자였다.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자신의 자동차 조수석에 수진과 애완견 ‘루시앤루르’를 태우고 직접 운전해서 이탈리아 피렌체나 오스트리아 빈으로 여행을 떠났다. 수진은 내내 졸다가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깨곤 했다. 그는 그곳 박물관에서 미켈란젤로나 로댕 같은 예술가의 작품을 보여주며 수진의 감상을 묻기도 했다. “처음에는 시험 보는 것 같아서 부담도 되더라고요.” 마리카 선생님은 발레 이외의 다른 것들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 자체가 하나의 인생수업이라는 걸 그때는 말해주지 않았다.

집에서는 식탁을 차리는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단둘이 먹는 식탁이었지만 식탁보는 깨끗하게 해서 깔고, 포크는 어떤 종류를 어디에 놓고 냅킨은 어디에 두는지도 꼼꼼하게 지적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여느 가정집처럼 TV 뉴스를 봤다. 수진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 눕게 하고는 수십 차례 비벼서 따뜻해진 손으로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할머니 손은 약손 하듯이.

“그때 선생님은 제가 보통의 삶을 살게 하면서 발레는 스텝을 밟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겉으로 보이는 테크닉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줬어요. 진짜 발레가 나오려면 안에서 한 인간이 돼야 한다는 걸 말이지요. 발레는 결국 사람과 사람의 작업이니까요.”

○ 인생수업 2막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발레 지도자였던 마리카 선생님의 집은 유명 발레인들로 북적북적했다. 발레학교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발레리나들과 당대 최고의 발레리노였던 루돌프 누레예프도 자주 들렀다. 유명인사들이 이웃처럼 드나들다 보니 수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들은 이름만 들어도, 잠시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와∼’ 소리가 나올 법한 사람들이 그에게는 그저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마리카 선생님의 집에서나 기숙사에서나 사람들이 항상 주위에 있어도 수진은 외로웠다. 어렸을 때 혼자 떠나온 길이라 고독은 언제나 그와 함께했다. 사람하고 같이 있어도 울고 싶어지는 때가 종종 있었고, 사람들은 곁에서 깔깔대고 웃는데 괜히 외로워지는 때가 적지 않았다.

세계 정상급인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986년 겨울, 슈투트가르트는 영하 20도의 혹한이었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발레단 극장에서 먼, 도시 외곽에 잡은 아파트 방은 지하였다. 곰팡이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매일이 악몽이었다. “또 그만두고 싶었어요. 음식도 이상하고 독일어라는 낯선 언어와 또 씨름해야 하고. 사람들은 너무 차갑고요.” 슬럼프가 찾아왔고, 일상생활에 익숙해지는 데 다시 2년여가 지나고 나서 수진은 두 번째 인생 공부를 함께할 사람을 만났다.

같은 발레단 무용수이자 지금의 배우자인 툰치 소크만(52). 터키에서 온 그 역시 일찍 부모를 떠나 수진과 비슷한 과정을 밟으며 외국 생활을 혼자 오래 한 사람이었다. 당시 독일에서 발호한 네오나치들은 이민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던 터키인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었다. 터키에서 왔다고 하면 “터키 사람?” 하면서 놀라움과 당혹함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았고, ‘터키인은 터키로 돌아가라’는 구호가 심심찮게 거리에서 들렸다. “서로 다른 어려움을 견뎌내면서 살아왔지만, 서로의 외로움과 고독함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이해했어요.”

수진은 결혼을 결정할 때 이 결혼이 자신의 발레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발레는 제 인생이고 제 인생이 발레지만, 결혼은 남편하고 제가 일대일로 하는 거예요. 이 남자 없이 살아간다는 게, 그 미래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에게 2002년 결혼은 인생수업 제2막의 시작이었다.

○ 잘 구운 자기(瓷器)

강수진은 어렸을 때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해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정말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의 일들을 그렇게 재미나게 풀어낼 수가 없었다. 물론 듣는 사람이야 그들이 겪은 실제 고통을 이해하기가 쉽지도 않았고 어쩌면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가 “죽고 싶을 정도로” 많이 힘들었던 때의 이야기는 그동안 TV 토크쇼나 그의 뒤틀리고 옹이 진 양 발가락 사진으로 잘 알려져 있다. 관리인도 잠든 오후 11시에 혼자 연습실로 몰래 올라가 달빛과 모나코 왕궁에서 새나오는 불빛을 받으며 새벽까지 연습한 이야기나, 다른 단원이 일주일 동안 신을 분량의 토슈즈를 하루 만에 거덜 냈다는 이야기도, 이야기로는 아주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느꼈던 어려움, 그가 치러낸 자신과의 싸움을 듣는 사람이 어떻게 체감할 것이란 말인가. 그는 “얘기로는 재미있지요”라고만 했다.

1990년대 초반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마술피리’를 공연했던 세계적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는 그를 ‘포슬랜(porcelaine·자기·瓷器)’이라고 했다. 자기는 좋은 흙을 빚어서 높은 온도에서 몇 시간이고 구워내야 비로소 깊고 그윽한 풍취를 뿜어낸다. 속이 단단히 여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빛깔로 색을 칠해도 제 빛이 나지 않는다.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이 그의 인생철학이다. 말로는 쉽다. 하지만 그는 그걸 항상 실천해 왔다. 모리스 베자르의 눈은 당시에 이미 정확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강수진#마리카 선생님#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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