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영화 ‘철의 여인’을 통해 본 여성 정치인의 패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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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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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와 소품의 치밀한 조화가 아우라를 만든다

영화 속 마거릿 대처의 푸른색 옷은 정치적 성장과 함께 점점 짙어진다. 왼쪽은 대처의 교육부 장관 시절 모습, 가운데는 그가 여성
 최초의 총리가 됐을 때 모습이다. 이후 대처가 정치력을 잃어가기 시작하자 붉은 계열의 옷이 등장한다. 필라멘트픽쳐스 제공
영화 속 마거릿 대처의 푸른색 옷은 정치적 성장과 함께 점점 짙어진다. 왼쪽은 대처의 교육부 장관 시절 모습, 가운데는 그가 여성 최초의 총리가 됐을 때 모습이다. 이후 대처가 정치력을 잃어가기 시작하자 붉은 계열의 옷이 등장한다. 필라멘트픽쳐스 제공

“엄마, 가지 마!”

운전석에 앉은 젊은 엄마는 애타게 창문을 두드리는 어린 쌍둥이 남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잡고 곧장 속력을 냈다. 어느덧 런던 국회의사당 앞. 이제 막 하원의원이 된 34세 마거릿 대처의 눈에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대처의 눈빛을 주시하던 카메라는 그의 하이힐로 시선을 돌렸다. 6cm쯤 되는 그의 힐은 검은색 신사구두들과 대조를 이룬다. 카메라는 또 천장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검은 양복 물결 속에 외딴섬처럼 그의 파란색 모자가 화면에 잡힌다. 대처가 남성들만의 세계에서 역사적인 도전을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대처는 식료품집 딸로 태어나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철의 여인’은 그의 투지와 번뇌, 노년의 상실감을 담고 있다. 여성 감독의 섬세한 눈은 그의 옷 귀고리 브로치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다. 옷에는 정치인으로서의 대처의 신념과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집스러운 파란색 사랑

‘철의 여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배우 메릴 스트립은 영화에서 늘 파란색 옷을 입는다. 교육장관으로서 의회 연설을 할 때에도, 보수당 당수 선거에 나설 때에도 파란색 슈트를 입었다. 노년이 된 그의 옷장은 온통 파란 물결이다.

영국에서 파란색은 보수당을, 빨간색은 노동당을 상징한다. 영화 속 대처의 고집스러운 파란색 사랑은 뼛속부터 보수주의자인 그의 신념을 드러낸다. 영화에서 그는 표를 얻기 위해 신념을 버리라는 동료들을 질타하고 ‘약해빠진 신사들’과 ‘포퓰리스트’를 증오한다. 실제 대처도 중요한 순간마다 파란색 옷을 즐겼다. 1979년 최초의 여성 총리로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공관 앞에 섰을 때 입었던 파란색 피터팬 칼라 재킷과 주름치마는 유명하다. 영화도 이 전설적인 ‘파워슈트’를 그대로 재현했다.

영화는 대처의 정치적인 성장과 더불어 옷의 파란색 톤이 미묘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필리다 로이드 감독은 영국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마거릿의 옷은 하늘색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짙은 파란색 슈트로 바뀌고 마침내 보수당 당수가 됐을 때에는 로열블루(영국 왕실의 관복색)가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화 속 대처의 옷이 붉은빛을 띠기 시작한다. 1990년, 당에서 신임을 잃고 총리에서 물러나는 순간. 영화에서도 실제로도 그의 선택은 새빨간 장밋빛 슈트였다. 로이드 감독은 “갑자기 붉은계열 옷이 나오면서 관객들은 상황이 잘못되고 있음을 감지할 것”이라며 “다우닝가를 떠날 때의 강렬한 빨간색은 대처를 오페라 속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처를 지척에서 본 에드위나 커리 전 의원은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붉은 슈트는 저항의 뜻”이라며 “‘나는 영광의 불꽃 속으로 걸어 나간다. (나를 배신한) 당신들은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일침을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콘 진주목걸이와 사각 백

“제발 그 모자와 진주목걸이 좀 벗어버려요.” 보수당 당수 선거에 나가 약해빠진 의회를 뒤흔들겠다는 대처에게 그의 이미지 컨설턴트가 말했다. 특권층 부인처럼 보인다는 얘기였다. “모자는 포기해도 진주목걸이는 안돼요. 쌍둥이를 낳았을 때 남편이 준 거거든요.”

실제 대처는 남편이 선물한 진주목걸이를 늘 착용했다. 파워슈트 안에 입은 리본 블라우스도 그만의 아이콘. 그는 리본에 대해 “부드러워 보이면서 예쁘다”고 말했다. 진주목걸이와 리본은 그의 여성성을 상징하는 셈이다.

‘비밀병기’로 불렸던 검은색 사각 아스프레이 핸드백도 유명하다. 대처는 권위의 상징으로 핸드백을 책상 위에 휙 올려놓고 좌중을 긴장시킨 뒤 결정적인 문서를 꺼내곤 했다. 이 가방은 지난해 런던 자선경매에서 2만5000파운드(약 4460만 원)에 낙찰됐다.

진주목걸이와 파워슈트, ‘비밀병기’ 핸드백. 부푼 머리 스타일은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아 풍자 만화가들의 단골 메뉴가 됐다. 핸드백은 각료를 때리는 모습으로 풍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서 그가 선보인 ‘파워슈트’는 다른 여성 정치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마침 1980년대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급물살을 타며 남성복에서 영감을 얻은 여성용 슈트의 인기가 치솟던 시기였다.

대처처럼 저마다 아이콘을 내세우는 여성 정치인도 많다. 미국의 전·현직 여성 국무장관들만 봐도 그렇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외교적 의미가 담긴 브로치, 콘돌리자 라이스 전 장관은 섹시한 힐로 유명하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치마보다 바지정장을 즐겨 입는다. 선거를 치를 때에는 클린턴 장관도 파란색을 주로 택했다. 미국에서는 파란색이 민주당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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