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케이팝 인더스트리-②日의 신한류 전도사 ‘후루야 마사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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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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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하게 시작된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사랑…이제는 전도사
● "카라의 잠재성 높이 평가…동방신기가 케이팝 붐의 일등공신"


"27일 일본 도쿄 오다이바에서 1만 명이 참석한 '비스트' 쇼케이스를 진행하고 방금 도착했어요. 곧 3만 명이 참가하는 '2PM'의 쇼케이스도 있을 예정이고요. 한국 아이돌 인기가 정말 대단해요."

11월28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서 만난 후루야 마사유키 씨(古家正亨·36)는 일본 방송계에서는 신한류 전문가로, 한국 연예계에서는 케이팝 붐의 숨은 공로자로 인정받는 인물이다. 지난 10년간 일본에서 독보적인 케이팝 방송 DJ로 활약해온 한류 전파의 1등 공신이며, 지금도 일본에서 4개의 라디오 방송과 5개의 TV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며 한국 대중 가요를 소개하고 있다.

기자가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11월19일 일본 BS후지프라임 TV가 방송한 토론 프로그램 '일본에서 불고 있는 케이팝 걸그룹 열풍'에서였다. 당시 패널로 참석한 그는 여타 일본 음악 전문가들과 달리 한국 대중 음악에 대한 완벽한 지식을 바탕으로 "일본의 제이팝이 우월감을 버리고 케이팝을 배워야 한다"고 역설해 국내 누리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후루야 씨는 국내 연예계에서는 이미 유명 인사로 통한다. 2000년 김건모와 자우림을 시작으로 2003년 배용준을 거쳐 올해 '카라'에 이르기까지 한류 연예인들의 쇼케이스와 팬미팅 MC로 나선 것이 300여 회에 이른다. 케이팝 소장 앨범이 1만장에, 한국 대중가요에 대한 저술이 세 권이다.

최근에는 서울시와 함께 관광책자인 '마니악 서울'을 일본어로 출간했다. 한국을 오가면서 활동하는 동안 그의 여권에는 출입국 도장이 300번 넘게 찍혔다. 그에게 일본 시장에서 케이팝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물었다.

■ 친구의 권유로 듣게 된 한국 대중가요에 깜짝 놀라

- 일본의 한류 전문 방송인이라고 직업을 표기하면 될까요?

"라디오 DJ와 방송기획자로 10년 이상 일을 해왔어요. 그런데 일본에는 '방송인'이라는 표현이 없고 모두 '탤런트'라고 부릅니다. 실제론 음악을 소개하고 글도 많이 쓰기 때문에 저널리스트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대중가요는 유행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를 10년 이상 연구해왔습니다."

- 언제 처음 한국 대중음악을 접했나요?

"1997년 캐나다에서 유학하던 시절이에요. 한 한국인 친구가 토이(Toy)의 2집을 건네더군요. 작은 선물이었지만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어요.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일본사람에게 한국노래란 조용필, 계은숙 김연자 등 트로트가 전부거였든요. 그런데 이 같이 세련된 음악을 한다는 사실에 감동 받았어요. 이후 서태지 듀스 클론 등 당시 인기음반을 듣고는, '한국에 이렇게 다양한 음악세계가 있는데, 90%의 일본인들은 모르고 있으니 내가 소개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캐나다를 떠났습니다. 일본을 거치지도 않고 곧장 서울로 간 거죠.(웃음)"

- 한국 유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 한국대중가요를 소개한 것인가요?

"그렇긴 한데 쉽지는 않았어요. IMF가 찾아와 1년 반의 유학을 접고 일본의 방송계로 복귀한 것이 1999년 무렵이에요. 한국가요 소개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기획서를 만들어 방송국문을 두드렸는데 다들 거절하더군요. '도대체 누가 듣겠냐'는게 이유였죠. 생각해 보세요. 일본대중문화 개방이 1998년이고 2002년 월드컵이 3년이나 남았던 시절이에요. 다행히도 한 홋카이도 라디오 방송에서 스폰서(광고)가 있다면 해볼 수도 있겠다는 답을 받았어요. 그래서 도쿄로 향해 한국의 대기업들을 찾아다니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지요. 그런데 자기들은 글로벌 기업이지 한국 기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거절하더군요. '한국' 이미지에 기대어 덕 볼 게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런 노력 끝에 한국관광공사의 후원을 받게 돼 홋카이도 지역에서 'Beats of Korea'란 한류소개 프로그램을 2000년 최초로 만들 수 있었어요. 물론 그 방송은 꾸준한 인기를 얻어 1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 우연한 만남이 어느새 당신을 케이팝과 한류 전문가로 만들었군요.

"솔직히 말해 케이팝 붐이 생기면 좋겠다는 마음도 없었어요. 일본사람들도 한국대중음악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었을 뿐이죠. 그런데 지금은 너무도 인기라서 오히려 제가 어리둥절한 지경이에요. 제가 예상한 것과 달라서 조금 복잡한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웃음)"

■ 이제는 제이팝을 압도할 정도의 힘을 지닌 케이팝

2007년 일본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동방신기는 오늘날 케이팝 아이돌 붐의 든든하나 후원군이 됐다는게 후루야의 평가다. 연합뉴스
2007년 일본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동방신기는 오늘날 케이팝 아이돌 붐의 든든하나 후원군이 됐다는게 후루야의 평가다. 연합뉴스

일본은 전 세계 음악시장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한 시장을 보유한 문화 선진국이다. 이미 1960년대부터 미국의 팝스타들에게 일본은 빼어놓을 수 없는 공략지역이었다. 아시아 시장에서 제이팝은 특별한 노력 없이도 수십 년 째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흐름이 뒤바뀐 것이 1990년대 후반부터고 이제는 아시아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케이팝은 제이팝을 누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국의 걸그룹 열풍으로 이제는 제이팝의 본진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 케이팝의 일본 시장 진출 노력은 꽤 오래됐지만 올해처럼 큰 반향은 처음이라 일본보다 오히려 한국에서도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왜 갑자기 걸그룹 열풍이 불었다고 보나요?

"저는 동방신기의 활동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동방신기가 어떤 위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정말 큰 인기를 거둔 그룹입니다. 그간 한국 가수들이 일본 시장을 두드린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일본 음악 시장의 특징을 알아야 하는데 일본의 가수란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작은 공연과 지방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등 바닥을 훑는 작업을 하는 게 관례에요. 겨우 도쿄만 왔다가 인사하고 돌아가는 것으론 일본 팬들의 마음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작업을 2007년 이후 동방신기가 해낸 거죠. 현재 동방신기가 활동을 중단했지만 일본 팬들은 아마도 상당기간 동방신기를 사랑하고 기억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일본이거든요. 어찌됐건 동방신기 파문 이후 다른 케이팝 스타들이 누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마침 한국에 걸그룹 열풍이 불고 있었던 겁니다. 유튜브 등의 UCC사이트를 통해 일본 팬들이 알음알음 걸그룹들을 주목한 것이지요. 2002년의 보아와 2007년의 동방신기란 바탕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현상이기도 합니다."

- 소녀시대나 카라 포미닛을 일본인들도 매력적으로 받아들이지요?

"물론입니다. 소녀시대나 카라만 놓고 봤을 때도 기존의 일본 여성 그룹에 없는 감각과 스타일을 갖고 있습니다. 미인인데다 노래까지 잘 불러요. 10점 만점에 10점 만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그간 일본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컨셉트의 아이돌입니다. 일본에선 오히려 '부족하기 때문에 응원해야지'라는 논리가 우세하거든요. 케이팝 걸그룹은 순식간에 일본 젊은 여성들의 '워너비'가 되었습니다."

- 혹시 어떤 아이돌 그룹이 일본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저는 '카라'가 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일본 아이돌에 있는 감각이 있는데다가 개성 또한 넘치거든요. 게다가 부족한 일본말까지 열심히 배워서 사용하려고 하니 더 귀엽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실제로 내년에는 일본 드라마 출연도 예정돼 있고 버라이어티 프로에서도 활약상이 두드러지거든요. 한국에서의 인기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일본에서는 당분간 카라의 왕성한 활약이 기대됩니다."

일본에서 예상외의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카라. 카라는 2011년 1월 방영 예정인 일본 민방 TV도쿄의 드라마 ‘우라카라(사진)’에 출연한다.
일본에서 예상외의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카라. 카라는 2011년 1월 방영 예정인 일본 민방 TV도쿄의 드라마 ‘우라카라(사진)’에 출연한다.

- 소녀시대나 카라 모두 자신의 대표곡들을 일본어로 바꿔 불렀는데요. 반응이 어땠나요?

"아주 재미있는 현상인데요. 지금까지 보아에서부터 동방신기 까지는 모두가 일본어로 불러야 했습니다. 실제 일본팬들도 이들을 제이팝의 일부로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다릅니다. 확실하게 소녀시대와 카라를 케이팝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에요. 실제 소녀시대가 부른 'Gee'의 일본어 버전은 조금 어색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에요. 몸에 맞지 않는다고 할까요? 결국 한국어 원곡을 더 사랑하고 즐겨 들을 정도에요. 더 충격적인 사실은 카라에게서 나왔는데요. 지난 10월에 카라의 한국어 베스트 앨범이 오리콘 데일리 차트에서 2위를 기록한 것이에요. 일본 음반 관계자들이 모두 수군거렸을 정도입니다. 앞으로 한국 가수는 한국어로 해야 한다는 정답을 준 셈이에요."

■ "일본은 왜 글로벌 시장 진출에 실패했을까?"

- 아시아 여러 음악시장에서 케이팝이 우위를 점하는 상황은 어떻게 보시나요?

"2000년대 초반에 태국시장을 보니 히트차트가 제이팝 일색이더군요.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일본은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단순하게 제이팝이 앞서갔기 때문에 1위를 했던 것이죠. 그런데 지금 케이팝은 적극적으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고 있어요. 인터넷을 통한 확산전략에도 발 빠르게 대처했고요. 이른바 국제화의 감각 때문에 제이팝이 밀려난 느낌입니다."

- 일본 방송에서 "케이팝이 제이팝 보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다"고 평가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199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 케이팝은 어느 정도 일본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2007년 이후부터는 제이팝 영향력에서 완전하게 벗어나 월드팝이 되었다는 평가입니다. 예를 들어 원더걸스의 '텔 미' '소 핫' 같은 노래는 대단히 미국적인 노래라고 생각했어요. 그 차이가 바로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이 급속하게 세계화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제는 일본 젊은이들의 국제 감각이 한국보다 떨어진다는 평가에요. 언제부터인가 일본이란 나라는 밖을 보지 않고 국내만 보게 됐죠. 그래서 '갈라파고스 현상'이란 얘기도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의 삼성 LG 등과 비교해 일본 가전업체의 몰락 이유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 1년 전,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허민 씨와 결혼도…


그는 "이제 겨우 한국 아이돌 열풍"이라며 보다 음악성 높은 한국 발라드 가수들이 일본에 소개돼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실제로 그는 아이돌 그룹보다는 신승훈 같은 발라드 가수의 팬이다. 요즘에도 한국 가요계의 숨은 진주를 발굴하기 위해 부지런히 한국을 오가며 산다. 직접 '올드 하우스'라는 인디 레이블을 만들어 실력파 한국 가수들을 소개하는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1년 전엔 한국의 가수 허민 씨(29)와 결혼하기도 했다.

- 댄스 장르는 언어가 달라도 상관없다지만 케이팝 발라드까지도 일본에서 인기를 얻는 날이 올까요?

"저는 언제나 일본 미디어에서 '아직은 케이팝 붐'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요. 물론 케이팝의 주류가 아이돌의 댄스음악이기 때문에 순식간에 다양한 장르가 인기가 있는 상태가 아니긴 해요. 그런데 과거를 돌아보면요, 한동안 트로트를 케이팝이라고 생각했고 2003년 '겨울연가' 열풍 때는 드라마 OST를 케이팝이라고 오해하고 있었어요. 잠시 보아나 동방신기를 거쳐 이제는 아이돌이 케이팝이라고 오해받는 거죠. 보다 음악성 있는 뮤지션들이 일본으로 진출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한국과 일본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음악시장을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제 꿈이기도 하고요."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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