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북스/커버스토리] “꿈이 무엇이든 공부부터”…‘엄친딸’ 이인혜의 공부 시크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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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7일 14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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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를 해야 자신의 꿈 확실히 알 수 있어
● 1인2역 암기법 등 연기 경험 살린 학습법 활용
● "내 스타일은 '장거리형'…조바심내지 않고 달릴 것"


이인혜는 \'엄친딸\' 타이틀 때문에 불리한 점도 있다고도 말한다.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런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이인혜는 \'엄친딸\' 타이틀 때문에 불리한 점도 있다고도 말한다.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런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다. 스포츠동아 자료사진.

중학생 시절, 아역 배우로 활동한 친구가 있었다. 코미디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출연한 덕에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의 인지도를 갖췄다. 그러나 그 친구가 학교에 오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불과 2~3분 되는 방송 분량을 찍기 위해 하루 종일 대기하고 서울과 지방을 오가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상위권이던 그의 성적은 중하위권으로 떨어졌고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그 스스로도 그에게 '할 수 없으니까…'라는 '면죄부'를 줬다.

어린이, 청소년기에 연예 활동을 하는 대다수의 연기자들은 그처럼 공부와 연기 활동 중 한 가지를 포기한다. 또 연기 경력을 바탕으로 겨우 대학에 진학해서도 학적만 걸어두는 '유령학생'으로 살아간다.

탤런트 이인혜(29)가 '엄친딸'로 세간에 화제가 된 것은 그가 이런 '암묵적 법칙'을 깬 희귀한 연예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인이 돼서도 '학교3'(2000~2001년), '쾌걸 춘향'(2005년), '황금사과'(2005~2006년), '황진이'(2006년), '인순이는 예쁘다'(2007년), '사랑은 맛있다'(2008년), '천추태후'(2009년) 등 많은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해왔다. 하지만 지난 몇 해 동안 그의 이름을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내리게 했던 배경은 주로 학업과 관련된 것이었다. '고교 내신 1등급' '고려대 수시전형 합격' '28세에 최연소 연예인 교수 임용' 등은 그를 설명하는 중요한 프로필이다.

현재도 드라마와 버라이어티쇼 출연 연기자, 고려대 일반대학원 언론학과 석사 과정 학생, 한국방송예술진흥원 방송연예탤런트학부 겸임교수 등으로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는 이인혜. 그가 최근 자신의 공부비법을 담은 자기계발서 '이인혜의 꿈이 무엇이든 공부가 기본이다!(살림프렌즈)'를 펴냈다. 이 책은 발간 1주일 만에 '인터파크'(2위), '예스24'(3위), '알라딘'(3위) 등 인터넷 서점의 청소년 도서 판매 집계 순위에서 최상위권에 올라와 있다.

공부에만 '올인'해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중고교시절, 연기와 학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이 배우의 자기 관리법은 무엇이었을까. KBS1TV 한국전쟁 60주년 특별기획드라마 '전우' 촬영차 강원도 세트장에 머물고 있는 그를 2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부족한 점이 많은 나도 내 목표를 이뤘던 만큼 인생 후배들에도 똑같이 해 낼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문을 열었다.

▶ 자처한 두 마리 토끼 쫓기, 오히려 공부에 도움 돼

이인혜는 초등학교 3학년때 직접 응모해 발탁된 '표준전과' 모델로 '데뷔'했다. 이후 MBC 어린이합창단 활동을 했고 KBS 창작동요제에 출전해 우수상을 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린이 합창단을 배경으로 한 MBC 드라마 '천사들의 노래'에 캐스팅된 것이 배우 인생의 첫 걸음이었다. 부모님의 극성스런 '치맛바람' 덕에 연기와 학업의 병행이 가능했던 건 아니었을까.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날 무렵 부모님께서 이제 중학교에 들어가게 됐으니 학교생활에만 몰두하라고 하셨어요. 아무리 저항해 봐도 소용이 없었죠. 그런데 연기를 병행했던 초등학교 때는 줄곧 반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성적이 중학교 첫 시험에서는 반에서 12등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어요. 매사에 의욕이 떨어진 거죠. 부모님께 무릎을 꿇고 빌었어요. '성적이 떨어지면 곧바로 방송 활동을 접는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다시 촬영 현장에 갈 수 있었죠. 요즘 촬영 현장에서 만나는 아역 배우 중 상당수는 아이보다 부모가 더 열심인데, 연기가 자신의 꿈이 아니라면 공부든 연기든 잘 하기 힘들 거예요. 전 오히려 부모님이 반대하다보니 연기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졌고 성적도 목숨 걸고 직접 챙길 수밖에 없었어요."

그가 쓴 책 제목, '꿈이 무엇이든 공부가 기본이다!'는 공부에 뜻이 없거나 '내 장래 희망은공부와는 전혀 상관없다'며 교과서에 안녕을 고한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특히 반길 표현인 듯 했다. 이 제목을 붙인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까.

"내 적성과 취미는 무엇이고, 내가 쫓는 꿈을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모두 공부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저 역시 공부를 하면서 제가 원하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1학기 때보다는 2학기 때 성적이 좋고, 중간고사 때보다는 기말고사 성적이 좋은 식이었죠. 또 공부를 통해 발견한 제 장점은 인내와 끈기였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앞서가더라도 그들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고 천천히 실력을 쌓는 노하우를 익히게 됐죠."

그는 공부를 통해 자신이 '장거리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덕분에 연기 생활, 사회생활에서도 좀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연기 생활을 하다보면 성과가 잘 나지 않아 조바심을 내게 되는 일이 많죠. 저보다 늦게 출발한 사람이 앞서가기도 하고요. 보통 사람들 같으면 우울증에 걸리거나 슬럼프에 빠지겠지만 저는 '난 원래 남들보다 느리니까 앞으로 좀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는 이렇게 자신의 성향에 맞는 공부법을 찾는 과정을 '공부 스타일링'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개성과 성격에 따라 공부법을 찾는 '맞춤식 교육'인 셈이다. 책을 통해 공개한 공부 스타일링 노하우는 다양하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의 엘리 우즈가 딱딱한 법률 사무소에 핑크빛 액자를 세워놓고 분홍색 털이 달린 펜으로 메모하는 것처럼 학습 공간을 꾸미든 사소한 문구 하나를 사든 각자에게 확실히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 △고학년일 수록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인만큼 체력으로 학습 의욕을 높일 것 등이었다. 이 가운데 특히 연기와 학업을 병행하며 터득한 노하우들이 눈에 띄었다.

- 자투리 시간 활용법이 인상적이에요.
"촬영 장소로 가기 위해 이동하는 차 안에서 책이나 동영상 강의를 보려면 멀미가 났어요. 그래서 차 안에서 음성 파일을 저장한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이 들었어요. 영어 듣기를 재생하기도 하고, 직접 녹음한 탐구 영역 핵심 내용을 반복해 들었죠."

-촬영장에 있을 때는 어떻게 공부했나요.
"문제집과 교과서를 가지고 다니면서 틈틈이 봤어요. 또래 친구들은 밥을 먹으러 간다고 외출을 하기도 했지만 저는 시간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해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죠."

시끄러운 곳에서 공부하는 노하우도 이때 터득했다. 지문을 읽으면서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 언어와 외국어 영역 공부나 암기 학습은 피하고, 문제 풀이의 논리적 흐름만 따라가면 되는 수학 공부를 하는 식이었다.

배우 경험을 살려 '1인 2역 암기법'을 활용하기도 했다. 대본을 외울 때 상대와 대화를 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잘 외어지는 것처럼 교과서를 암기할 때도 상대방과 문답을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
"'신라가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한 게 언젠지 알아' 라고 물으면 '그건 내가 잘 알지, 내물왕 때잖아'라고 받아치는 식으로 지문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되뇌이면 기억에 더 잘 남더라고요."

인형들에게 역할을 부여하면서 '상황극'을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필수 영양소를 외울 때 인형들에게 각각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무기 염류, 물 등의 캐릭터를 부여하고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탄수화물' 역할을 맡은 인형에게 "네가 체내에서 산화되면 1g당 열량이 얼마나 생기더라?"라고 물으면 인형이(사실은 자신이) "4kcal"라고 답하게 하는 식이었다.
이인혜는 공부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제공 살림출판사.
이인혜는 공부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제공 살림출판사.

▶ 색안경 낀 시선에 의지 더 불태워

촬영장에서까지 공부를 하는 그를 대부분은 기특해 했지만 어떤 이들은 "연기에 집중하려면 공부를 포기하라"고 조언했다. 자칫 연기에 목숨 걸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하라느니, 대학은 연극영화과로 가라느니 하는 말들이었어요. 이 조언에 모두 따랐다면 지금 제 위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은 늘 따라다녔다. 연합고사에 떨어져 기부금을 내고 고등학교에 들어왔다느니, 연예인 특례입학으로 대학에 입학했다느니 하는 말들이었다. 그는 이런 말들 때문에 오히려 이를 악물게 됐다고 했다.

"내 실력을 직접 증명해 보이겠다는 심정으로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학급 임원 선거에도 적극적으로 출마했죠. 고등학교 2학년때는 전교 학생회장도 맡았고 대학에 와서도 학생회 활동을 했어요."

완벽하게만 보이는 그에게도 시행착오의 아픔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큰 고민 없이 모 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재수를 하게 된 것.

"고등학생 때 하도 시간에 쪼들리다보니 '대학생만 돼 봐라. 원 없이 연기할테니…'라고 생각했어요. 연극영화과에 가면 마음껏 연기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학교, 학과에 대한 성취감도 낮았고요. 학교를 다니면서 재수를 준비했어요. 그 때 'TV유치원 하나둘셋' MC를 맡고 있었는데 스튜디오에까지 문제집을 들고 다녔죠. 떨어질까봐 두려워 재수한다는 사실은 말 못하고 '학생 과외 준비 때문에 갖고 다닌다'고 둘러댔죠."

남다른 노력 덕에 그는 이듬해 대입 수시전형에 응시해 고려대 정경학부에 합격했다. 학생회 활동, 각종 경시대회 및 콩쿠르 출전, 방송 활동, 내신 성적 관리 등 어느 하나에도 소홀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 "엄친딸 이미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방송작가 김일중 씨는 "연예인이 돼 신분상승을 꿈꾸는 이가 많은 현대 사회에서 이인혜, 김태희, 성시경 등 이른바 '엄친아' 연예인은 연예인에게서 결여되기 쉬운 '정통성', 즉 학력까지 확보함으로서 뛰어난 상품 가치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공부법 책을 낸 이인혜도 '엄친딸 마케팅'을 활용한 셈이다.

- 명문대 출신이라는 점이 연예계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나요. 특히 방송계에 동문 선배들이 많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동문 선배 덕에 도움을 받은 적은 없어요. 뭐든 열심히 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대중들이 연기자로서도 더 예쁘게 봐주시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하지만 덤벙거리고 털털한 원래 성격을 내비쳐도 '여우처럼 연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결국 연기가 아닌 다른 길을 택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아 속상하죠."

그는 올해 SBS '일요일이 좋다-골드미스가 간다'와 QTV '순위 정하는 여자'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등 처음으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날 것' 그대로를 과장된 웃음과 함께 전달하는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지금까지의 '엄친딸' 이미지에 반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얼마 전 방영된 '골드 미스가 간다'의 큐레이터 도전 미션에서 그는 클림트의 유명작 '키스'를 가로로 잘못 세워 놓고 '모네 작품'이라고 소개하는 모습으로 '대굴욕'을 겪었다.

- 이런 에피소드들이 '엄친딸' 이미지에는 해가 될 것 같은데요.
"'나는 똑똑하니까 망가지는 건 절대로 안해'라는 생각은 연기자로서 정말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진지한 역할을 맡으면 진지하고 쇼 프로그램에서는 확실히 웃겨야죠. '엄친딸'이라는 이미지로만 굳어지는 것도 원치 않고요."

그는 자신이 여러모로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이룬 것보다 이뤄야 할 것이 훨씬 많다고도 했다.

"오래달리기로 치면 제 목표의 3분의 1쯤 달려 온 것 같아요. 제가 맡은 일들에서 보다 더 큰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 지금 제 꿈이죠. 연기는 평생하고 싶어요. 예전 연기를 지금 보면 틀에 박혀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원래 '느린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바심 내지 않고 천천히 경험을 쌓으려고요."

그가 마지막으로 인생 후배인 초중고 학생들에게 강조한 것 역시 스스로 깨달은 교훈, '공부는 삶을 단단하게 한다' 였다. "내성적이어서 묻는 말에 대답도 잘 못했던 제가 공부를 통해 제 스스로의 스타일과 장단점을 발견하고 자신감도 갖게 됐듯, '나는 원래 이 정도 밖에 안돼"라고 섣불리 한계를 짓지 말고 공부로 자신을 찾는 작업을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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