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호재]콘텐츠 진흥원이 ‘콘텐츠 녹음실’ 팔다니

  • 입력 2008년 12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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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녹음실이 없어졌나요?”

최근 클래식 음악인과 녹음 엔지니어들 사이에서 화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해 온 퍼블릭 스튜디오(공영 녹음실) 철거 소식이었다.

2001년 서울 양천구 목5동 대형빌딩 지하에 세워진 이 스튜디오는 국내 최고, 최대의 녹음 시설을 갖추고 저렴한 가격으로 대여 서비스를 해왔기 때문에 음반 제작을 원하는 음악인들에게 높은 인기를 누렸다.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 씨가 방한 때 단골로 사용했을 정도로 시설 수준이 높았다.

그러나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포함해 25억 원어치의 고급 녹음장비 등 총 43억 원을 들여 만든 이 스튜디오는 9월에 문을 닫았다. 고급 장비들은 경매 매물로 나왔지만 10분의 1 가격에도 주인을 찾지 못하자 경기 남양주 종합영상촬영소와 제주 영상미디어센터로 흩어졌다. 한 번 분해한 장비는 제 가치를 찾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스튜디오가 있던 자리에는 지난달 말 해산물 뷔페가 들어섰다. 음악인들은 “최고급 녹음실을 부수고 들어선 것이 해산물 레스토랑이냐”면서 “정부의 문화적 수준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진흥원 측은 “보증금 40억 원에 월 임차료도 수천만 원이어서 3시간에 40만∼50만 원의 사용료를 받아서는 임차료를 내기도 벅찼다”고 해명했다. 진흥원 관계자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문화콘텐츠센터 건물 신축 비용이 필요해 보증금을 빼야 했다”고도 말했다. 새로운 운영자를 구하려 했지만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아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음악 콘텐츠 진흥을 위해 설치했던 국내 최고 수준의 스튜디오를 대안도 없이 문 닫은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녹음 기술은 문화콘텐츠 발전을 위한 필수 인프라이며 동시에 첨단 예술 장르다. 미국 할리우드 등에서는 녹음 기술자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정도다.

녹음전문가인 이한철 이어맥스 대표는 “호주 일본 등에서 정부기관이 운영하는 퍼블릭 스튜디오는 문화산업의 튼실한 기초가 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그나마 유일한 기관이 사라져 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진흥원은 새 건물을 세우자고 43억 원이 투입된 국민의 재산을 순식간에 고철덩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 같은 어리석은 셈법이 우리나라 공무원들에겐 별로 이상하지 않은 모양이다.

정호재 인터넷뉴스팀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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