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변치 않는 ‘법률만능주의’

  • 입력 200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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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법과대학 신입생 시절, 입문(入門)과목인 법학통론 시험시간이었다. 교수님은 칠판에 큰 글씨로 ‘법률만능주의를 논하라’고 썼다. 앞이 캄캄했다. 법률만능주의라는 말의 뜻도 제대로 모르는 판에 그것을 논(論)하라니, 1학년에겐 지나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만들어 ‘한국적 민주주의’를 향한 유신시대를 열었다. 대학엔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탱크가 캠퍼스로 진입했다. ‘장충체육관 선거’라는 독특한 간접선거로 박 대통령을 거의 만장일치로 재선출했다. 당시 신입생의 처지에선 이 모든 정치적 소용돌이를 이해하기 벅찼다.

유신헌법이 법률만능주의를 보여 주는 큰 사례의 하나라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그때로부터 일제(日帝)강점기와 비슷한 35년이 지났다. 시대를 꿰뚫어볼 수 있는 ‘법률만능주의’라는 값진 잣대를 선물해 주신 교수님께 지금도 고마움을 느낀다.

‘법만 만들면 못 할 게 없다’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법률만능주의 법의식(法意識)은 예나 지금이나 좀처럼 변함이 없다. ‘개혁’의 이름으로 새 법안들을 끊임없이 쏟아 내고 있는 정부, 국회, 정당 등 국정(國政)주도세력은 말할 것도 없다. 각계 지도급 인사나 전문가들도 그런 ‘질곡’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법을 잘 안다는 법조인의 상당수도 그렇다.

법은 공동체가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규범이다. 구성원이 많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법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우리 사회는 도(度)가 지나치다. 걸핏하면 법을 만들거나 고치거나 없애자고 난리를 친다. 현행법을 아끼고 잘 운영할 생각은 별로 않는다. ‘지키면 귀찮고 안 지키면 편하다’는 수준까지 법의 가치가 떨어졌다.

물론 1970년대의 대표적 악법(惡法)인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등은 예외다. 정권 유지 및 장기집권을 위한 장치였고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한 법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법률만능주의 사례로는 단연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발상이 꼽힌다. 솔직히 필자는 대통령책임제든 내각책임제든, 대통령제의 경우 단임제 연임제 중임제 어느 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제도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올 상반기에 굳이 개헌을 관철하겠다는 자세는 못마땅하다. 왜 지금이고, 누구를 위함인지 설득력 있는 설명도 없다. 4년 연임제 개헌으로 대선과 총선이 동시에 치러지면 국정 운영이 잘될 것으로 믿는 자체가 법률만능주의의 소산이다. 일당(一黨)독재의 위험성엔 왜 눈을 감는지 모르겠다.

‘석궁 테러’ 사건을 계기로 사법부가 ‘사법질서보호법’을 만들겠다는 것도 법률만능주의다. 테러에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과잉대책이라는 말이다. 판사 등에 대한 보복범죄의 중벌(重罰)이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굳이 새 법을 또 하나 만들겠다는 발상이 사법부답지 못하다.

법원 주변에서의 1인 시위를 ‘악의적인 비방’으로 보고 무조건 막으려는 것도 지나치게 권위적이며 유치하다. 신뢰 회복 방안을 먼저 고민하는 것이 ‘사법부의 주인’인 국민에 대한 바른 자세일 것이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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