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핵에 無力’ 확인한 盧 정부

  • 입력 2005년 5월 20일 00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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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남북 차관급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를 공동보도문에 넣는 데 실패했다. 비료 20만 t을 주기로 하고 얻어낸 것은 ‘서울에서의 장관급회담 개최와 6·15선언 기념 평양(平壤)축전에의 장관급 대표단 파견’뿐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남북대화가 정상화되고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결국 비료 주고 평양 방문권 얻은 회담’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노무현 정부는 “북핵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던 장담이 무색하게도 무력(無力)만 드러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된 가운데 열린 이번 회담을 주변국들은 관심 깊게 지켜봤을 것이다. 북핵에 대한 원론적인 언급이라도 있어야 했다.

장관급회담도 안 열리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실익(實益)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핵 문제가 공식 의제로 논의될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북측은 비료 30만 t을 더 얻어내기 위해 몇 마디 의례적인 언급은 할지 몰라도 ‘핵문제는 미국과 얘기한다’는 입장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수차례의 장관급회담에서도 북한은 이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6·15 평양축전에 남측 고위 대표단을 파견하는 문제는 오히려 북측이 우리에게 간청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 점에서 파견 합의는 우리 측 성과라고 할 수도 없다. 선전적 성격이 강한 북측 행사에 장관급 대표단이 가는 것은 북한으로서 내심 반길 일이다. 우리가 고마워할 이유가 없다.

10개월 만의 당국자회담을 ‘비료 회담’으로 끝낸 1차적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우리 정부도 반성할 점이 많다. 남북대화 재개라는 정치적 명분과 정치인 출신인 통일부 장관의 평양행에 매달려 ‘북핵 최우선’은 빈말로 만들었다. 정부는 내달의 서울 장관급회담에서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이 시점에서 북핵 문제 해결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남북회담이나 장관급 방북은 국민 입장에선 별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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