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5>백년 동안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입력 2005년 4월 6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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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1967)은 서구의 문학계가 지나친 실험정신으로 ‘소설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 때 ‘소설의 소생’을 증명했다. 문단을 짓누르던 엄숙주의와 실험정신의 족쇄로부터 소설을 해방시켰던 것이다. 프랑수아 라블레식 유머문학으로 분류될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철학적 의미가 풍부하고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다. ‘마술적 사실주의’의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이 소설은 1982년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주었고 전 세계 대부분의 언어로 번역됐다.

소설은 ‘마꼰도’라는 가상 마을에 사는 부엔디아 집안의 7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서구의 식민지배와 왜곡된 근대화를 겪어온 콜롬비아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건들을 사랑과 미움, 만남과 이별, 환희와 고독, 탄생과 죽음 등 삶의 파노라마 속에 녹여 펼치면서 소재의 지역적·정치적 경계를 넘어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동시에 인물들의 반복적 행태와 순환적 서사 구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 의미와 한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유도하기도 한다.

작가의 표현처럼 ‘돼지꼬리 달린 아이가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 가족의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적인 갈등은 없지만, 대부분의 인물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련지을 수 있는 욕망과 사회적 금기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철저하게 진지함이 결여된 이 작품에는 구약성서와 중세 서사시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전설과 풍속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패러디와 아이러니, 유머와 함께 환상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결합을 암시하는 ‘마술적 사실주의’는 라틴아메리카인의 존재론적 인식이 반영된 표현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자연환경과 역사, 존재양식과 사고방식에서 서구인들과는 다르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인식적, 미학적 종속관계를 단절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는 서구의 이성중심적, 리얼리즘적 전통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 관련지어 언급되기도 한다. 중심부 담론에 의해 재단된 현실을 교정하는 대안적 세계를 창조하고, 중심부 담론의 오류를 바로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는 식민 지배를 받으며 왜곡된 자아에서 탈피하면서 진정한 주체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일종의 ‘탈식민주의 글쓰기’이다. 그래서 ‘모든 것의 해체’를 지향하는 제1세계의 포스트모더니즘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마술적 사실주의는 루이스 보르헤스 식의 환상문학과 구별된다. 마르케스의 마술성이 현실에 발을 굳건히 디딘 채 이야기의 현실 비판적 기능을 강화한다면, 보르헤스의 환상성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관념의 세계를 형성할 뿐이다. 자연히 정치·사회적 기능면에서 엄연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 소설의 경우 황석영의 ‘손님’, 임철우의 ‘백년 여관’ 등의 작품에서 마술적 사실주의의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환영과 혼령, 초자연적 현상 등 비현실적 요소가 현실세계의 일부를 구성하면서 우리 근대사의 비극적 경험과 민족 특유의 의식세계를 보다 심층적으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창민 서울대 교수 서어서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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