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랍스터를 먹는 시간'…베트남전의 상처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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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방현석씨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펴내며 “베트남을 통해 여기, 지금의 우리를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사진제공 창비
소설가 방현석씨는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펴내며 “베트남을 통해 여기, 지금의 우리를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사진제공 창비
◇랍스터를 먹는 시간/방현석 지음/336쪽 8500원 창비

소설가 방현석씨(42)의 두 번째 창작집.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중편 ‘존재의 형식’으로 올해 오영수문학상과 황순원문학상을 한꺼번에 수상했다.

‘존재의 형식’과 표제작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서는 오늘의 베트남과 한국 근현대사가 공존한다. 94년 만들어진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의 4대 회장인 방씨는 “기웃거린 지 10년이 되어서야 겨우 베트남을 무대로 한 이야기를 쓸 엄두를 냈다”고 ‘작가의 말’에 쓰고 있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서 랍스터는 인간이 가진 고독한 자기결단, 스스로 자신의 고통을 끊어내 버리려는 인간 존재를 상징한다.

베트남 주재 한국 조선소에서 일하는 건석은 한국인 관리자들과 마찰을 빚은 보 반 러이와 베트남 당 소속의 팜 반 꾹을 만나게 된다. 러이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게 몰살당한 부족의 생존자 중 한 명. 러이는 복수심에 불타 해방전쟁에 참여하나 전쟁터에서 연인을 잃는다. 러이의 동네친구 꾹은 전쟁으로 파괴된 베트남을 재건하려는 사명을 안고 해외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

건석에게도 숨겨진 상처가 있는데, 그것은 베트남 혼혈의 이복형. 어린 시절 건석은 동네에서 ‘베트콩’으로 불렸던 형을 내내 부끄러워했다. 형은 공장에서 일하며 건석의 학비를 댔고, 파업 농성을 하다가 경찰의 강경진압 중에 숨졌다.

러이는 회사의 은근한 압력에 결국 사표를 낸 뒤 고향으로 돌아가고, 베트남 공산당은 부당한 처사라며 러이를 복직시키라고 주장한다. 건석과 꾹은 러이를 찾아가지만 그는 고향에 남아 있겠다고 한다.

“잘못이 있다면 용서하세요. 옛날의 우리든, 지금의 우리든 말이에요.”(건석)

“내가 용서하지 못한 것이 당신들인 줄 아나…. 남을 용서하는 일은 쉽네. 끝내 용서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자신이네.”(러이)

건석의 연인 리엔은 러이의 고향에서 돌아온 건석을 위해 랍스터 요리를 준비한다. 끓인 랍스터 국물을 먹으며 건석은 중얼거린다.

“우린 왜 랍스터처럼 자신의 일부를 스스로 잘라 내버릴 수 없을까?”

88년 단편 ‘내딛는 첫발은’으로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을 때 방씨는 공장에 위장 취업한 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였다. 이후 작가는 첫 창작집 ‘내일을 여는 집’(1991), 장편 ‘십년간’(1995) ‘당신의 왼편’(2000)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70, 80년대 노동운동 현장을 비장하게 그려왔다.

이번 소설집은 이런 연장선에 놓이면서도 또 다른 화해의 길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이전과 달라 보인다. 등장인물들이 전작들처럼 맹렬한 투사로 변모하거나 ‘공동의 적’을 앞에 두고 연대하기보다는, 절망이 거듭되는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지난 세대의 악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이는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에 대한 깨달음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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