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조명현/벤처 경쟁력이 미래 좌우

최근 벤처가 한국 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 내로라 하는 재벌기업에서 근무하던 젊은 엘리트들이 조그만 벤처기업으로 속속 자리를 옮기고 있고 종업원이 수십 명밖에 되지 않는 몇몇 벤처기업의 시가총액이 수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중견 재벌그룹 전체의 시가총액보다 커졌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는 벤처기업들의 주식이 주로 거래되는 코스닥의 하루 거래대금이 사상 처음으로 대기업들이 상장돼 있는 증권거래소의 거래대금을 앞질렀다.

이같은 현상은 불과 일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조차 힘든 것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혼란스럽고 거품의 우려를 자아내기조차 한다. 하지만 이같은 벤처기업들의 급속한 성장은 사회경제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벤처기업들의 성장은 국부 창출과 이의 재분배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의 국부 즉 한국의 자산가치는 70년대에는 산업화과정을 통해, 80년대에는 부동산가치의 상승에 힘입어 크게 증가했고 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는 벤처기업의 성장이 국부 창출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작년 초 8조원에 불과했던 코스닥시장의 시가 총액이 1년만에 100조원에 근접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록 산업화와 부동산 그리고 벤처가 모두 한국의 국부를 증가시켰다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창출된 국부의 재분배 측면에서는 이들은 매우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산업화와 부동산으로 인해 창출된 부가 몇몇 재벌과 소수의 부유층에 집중됐던 반면 최근 벤처기업들로 인해 창출된 부는 비교적 다수의 일반 국민에게 재분배되고 있다. 우리 주변의 많은 보통 사람들이 벤처기업의 우리사주나 코스닥 투자를 통해 벤처로부터 창출된 국부 재분배의 수혜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벤처기업들의 성장이 지니는 또 하나의 경제적 의미는 벤처산업이 21세기 한국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경제는 재벌기업들이 중심이 돼 자동차 철강 조선과 같은 중후장대형 장치산업의 발전을 통해 성장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성숙산업 내지는 사양산업이 돼 더 이상 우리경제의 성장엔진이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경제는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산업이 필요하고 그 역할을 벤처산업이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소기업들인 벤처가 당장 대기업만큼 고용을 창출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인터넷 혁명과 맞물려 향후 도래할 디지털 사회에서 경제성장의 주역이 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같은 벤처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한국의 벤처가 경쟁력을 가지고 성장해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 벤처기업가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각오로 밤을 새우면서 새로운 기술개발에 몰두하는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최근 일부 벤처기업주들의 행태에서 보는 것처럼 코스닥 등록을 통해 자신의 재산 부풀리기에만 몰두한다든지 혹은 재벌처럼 계열사 불리기에 몰두할 때 우리는 벤처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다.

또한 재벌들이 벤처분야로 무분별하게 사업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혹은 경제적 유인이 필요하다. 순발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재벌기업들은 기업가 정신과 창의력 그리고 위험감수가 필요한 벤처사업에서 경쟁력을 가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재벌이 자금력을 앞세워 벤처산업으로 마구 진출할 경우 이제 막 발아하고 있는 한국벤처산업의 기반은 몰락할 것이 자명하다. 최근 벤처가 크게 성장했던 시기가 재벌이 구조조정으로 사업을 축소하고 있었던 시기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벌들은 벤처사업으로 진출을 꾀하기보다는 기존 사업분야에서 쌓은 지식과 역량을 기반으로 해당 사업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패기 있는 한국의 젊은 벤처기업가들이 참다운 ‘기업가정신’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되는 미래를 기대해본다.

조명현<고려대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