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 후폭풍 거센 인도네시아 …지역별 정치성향과 종교에 따른 전략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6일 16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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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치러진 인도네시아 대선의 후폭풍이 거세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으나, 프라보워 수비안토 후보자의 열혈 지지자들은 계속 반발하고 있다. 동남아 경제를 주도하는 화교와 미낭카바우 모계사회를 연구해온 내게 인도네시아 대선은 그들의 숨은 네트워크를 파악할 절호의 기회였다. 4월 17일 양 후보자 선거캠프 핵심 인사의 도움으로 중앙선관위를 시작으로 현지 투표장을 순회할 기회를 얻었다.

80%가 넘는 투표율을 보인 대선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자카르타 일대의 투표장에서 만난 서민층과 중국계 주민들은 조코위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미낭카바우의 본향, 수마트라 서부로 날아가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프라보워 후보의 열성 지지자들 천지였다. 실제 이 지역들은 전국에서 프라보워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왔다. 지역 주민들은 당일 저녁 조코위 대통령의 우세가 발표되자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밤새 확성기에서 격앙된 이슬람 지도자의 설교가 흘러나와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수마트라 지역 신문은 프라보워의 우세를 점치는 기사까지 내보냈다.

대선 이후 한국과 서구 언론은 조코위 대통령의 순조로운 승리를 주로 보도했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인도네시아의 분열은 이렇듯 심각했다.

이번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의 40%에 해당하는 8000만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히즈라’ 열풍이 거셌다. 아랍어로 ‘이주, 피신’을 뜻하는 히즈라는 세속적이고 환락적인 생활을 버리고 영적 변환을 거쳐 ‘독실한 무슬림으로 재탄생 하겠다’는 결심을 의미한다. 특히 무슬림 청년들은 프라보워의 러닝메이트였던 40대 ‘훈남’ 기업인 산디아가 우노에 열광했다. ‘무슬림은 쿨하다’는 프라보워 진영의 메시지가 확산되며 86세 고령의 보수적인 이슬람 지도자 마룹 아민을 부통령으로 선택한 조코위 대통령은 막판까지 고전했다.

하지만 가톨릭, 개신교, 불교 등이 결집한 자카르타, 자바 중부와 동부를 비롯해 힌두교의 섬 발리, 파푸아, 말루쿠 등 외곽 도서에서 선전한 조코위 대통령은 55.5%의 지지율로 재선됐다. 견고한 경제 성장세 속에서 조코위 정부의 인프라 구축 노력이 인정을 받은 셈이다.

종족, 언어, 종교가 극도로 다양한 1만7500여 개 섬이 통합되면서 인도네시아는 거대한 제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과 공유경제 확산으로 인한 디지털 경제의 성장이 눈부시다. 최근 미국이 중국제품에 대한 관세를 급격히 올리자 우회 생산기지로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이 더 주목받고 있다. 조코위 대통령은 집권 2기(2019~2024년) 인적 자원 및 기술 개발, 교육 경쟁력 강화, 4차 산업혁명 생태계 조성 등 소프트웨어 내실화에 집중할 계획이다. 아세안 국가들과 사람 대 사람의 교류를 강화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신남방 정책과도 방향이 일치한다.

하지만 프라보워를 구원자로 믿고 그를 지지한 44.5%의 유권자의 불만과 반격도 만만치 않다.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프라보워는 결사 항전을 예고하고 있다. 합법적으로 투쟁하겠다는 것이 프라보워 진영의 공식 입장이지만, 열혈 지지자들까지 완벽하게 통제하긴 어려운 상황 같다. 대선 불복 시위가 격화되며 총격으로 최소 8명이 사망하고 700명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다. 당장은 정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을 막아 시위가 잠잠해졌지만 6월 초까지 이어지는 라마단은 극단적인 무슬림이 활동하기 좋은 시기다.

특히 한국인이 많이 찾고 조코위 대통령 지지율이 높게 나온 자카르타와 발리는 테러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지역들이다. 지역 격차가 큰 인도네시아는 최근 지방자치가 강화되는 추세다. 우리 기업들은 프라보워 지지율이 높았던 지역에 접근할 때는 민감한 종교 상황과 정치 지형을 고려해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아체, 파당, 부킷팅기 등 수마트라나 반텐과 서부 자바 등 보수적인 무슬림이 많은 곳에서는 프라보워를 비판하는 발언이나 경솔한 행동은 삼가는 게 좋다. 또한 할랄 인증 강화 추세와 맞물린 경제 민족주의, 외국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높은 기대 수준 등은 한국 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진출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포인트다. 무슬림이 87%에 육박하는 인구 구조상 이슬람 세력의 보수화와 할랄 경제의 성장은 ‘정해진 미래’이기 때문이다.

김이재 한국동남아연구소 연구위원장·지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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