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플라 알아?” 교통 인프라 ‘세계 최하 수준’ 北지도자의 최신 트렌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4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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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노동당 제 1비서)은 김종태전기기관차연합기업소를 방문해 “한평생 인민행 열차를 타고 험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제1비서 생각이 갈마(번갈아)든다. 좋은 철도에 편히 모셨다면 이다지도 가슴이 아프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밀어 줄 테니, 그 열차에 오르던 위대한 수령님들을 모시는 심정으로 최단기간에 지하전동차를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석 달 후인 2015년 10월, 자체 개발한 새 전동차를 보기 위해 다시 찾은 김정은이 갑자기 간부들에게 “오플라(opla)가 뭔지 아나?”고 물었다. 오플라는 넉 달 전인 같은 해 6월 미국 디자이너 파테메흐 바테니가 공개한 1인용 ‘스탠딩 체어’ 이름이다. 선 채로 엉덩이만 살짝 걸치는데다, 앉는 부위가 실리콘이라 미끄러지지 않아 허리에 부담이 적다고 한다. 높이도 3단계(23, 27, 31인치)로 조절할 수 있다. 답변을 하지 못해 땀을 뻘뻘 흘리는 간부들 앞에서 김정은은 오플라가 건강에 좋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듬해 1월 1일, 평양에서 이 신형 지하전동차가 운행을 시작했다. 전에 없던 노약자석과 임산부석을 만들고, 자칭 인민 친화적으로 손잡이와 의자를 분홍색으로 칠했지만 당시 북한이 공개한 홍보영상과 지난해 일본 교토통신이 공개한 평양 지하철 영상에 오플라 의자는 없었다. 김정은이 당시 시찰에서 “전동차가 미남자처럼 잘생겼다”며 전체적으로는 만족한 걸 보면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바테니의 오플라는 당시 한국에도 거의 소개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허리 디스크 등을 예방하는 기능성은 있지만 1인용이라 많은 사람을 대량 수송해야하는 대중교통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간부들이 알았더라도 이미 완성돼 김정은이 시운전 행사까지 참여한 전동차 내부를 다시 뜯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은이 최신 트렌드인 ‘오플라’를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 BBC의 자동차 오락프로그램인 ‘탑 기어’를 즐겨봤고, 수 천만 원짜리 고급술과 명품 시계, 요트 등에 대한 지식도 상당하다니 그런 트렌드를 접하다 알았을 지도 모른다.

▷철도 사정이 열악한 북한에서는 평양~함경북도 청진(약 700㎞)까지 공식열차 시간표 기준으로 27시간 43분이 걸린다. 의식주도 최빈국 수준이다. 김정은 스스로 “흰 쌀밥에 고깃국은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평생 염원”이라고 한 게 불과 두 달여 전이다. 나라는 식량 원조를 받아야 할 처지고 교통 인프라는 세계 최하 수준으로 낙후됐는데, 최고지도자는 최신형 의자 스타일을 꿰면서 이를 강조하니 뭔가 어색하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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