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선 칼럼]요즘 일본, 그 불편한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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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간 갈등이 오래가는 건 일본이 변한 것도 한 원인
사실을 외면하긴 쉬우나 해법을 찾는 것은 어려워져
모든 정보 테이블에 올려놓고 껄끄러운 진실도 직시해야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늘 이용하던 활터에 갔는데 과녁의 위치가 바뀌어 있고, 그것도 예전보다 맞히기 힘든 구석진 곳으로 옮겨져 있다면…. 새 과녁의 위치가 다른 활터와 약속한 룰에도 맞지 않아 원상회복을 요구했지만 새 과녁이 뭐가 문제냐고 꿈쩍도 않고 버틴다면….

한국을 궁수, 일본을 과녁이라 치면 요즘 한일 관계가 꼭 그렇다. 당연히 한국은 화를 낼 만하다. 그래서 새 과녁이 아니라 예전 과녁이 있던 자리로 계속 활을 쏘며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는 아베 신조 총리의 재등장과 우익 성향 지도자들의 언동에서 한일관계가 삐걱대는 원인을 찾아왔다. 물론 그것도 맞다. 그런데 최근 일본 사회의 저변에서 변화가 일어나 예전의 일본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한국을 자극할 게 뻔하지만 과녁을 옮기는 아베 총리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변의 변화란 무엇인가. 지난달 말 서울에서 열린 한일포럼에서 그 대답의 일단을 엿볼 수 있었다. 이 포럼에는 일본의 정치인, 학자, 전직 관료, 기업인, 언론인 등 35명이 참석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인 이들의 말과 분위기에서 일본의 변화를 읽었다.

그 전에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게 있다. 일본의 입장을 설명하면 일본 편들기라고 오해하는 경향에 관해서다. 일본을 때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대안을 모색하려면 모든 정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게 먼저다. 한국 언론이 일본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조차 꺼린다면 언론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는 일이다. 객관적 사실은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며, 판단은 그 다음의 일이다.

일본의 변화 중 첫 번째는 일본 국민이 ‘사과 피로 증후군’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사과를 여러 번 했는데도 때만 되면 또 사과를 하라니 피곤하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지만 요즘 심해졌다고 한다. 친한파 일본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고, 최근 일본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일본인이 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선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일본 정치인과 일반 국민을 분리 대응해야 하는 우리로선 좋지 않은 변화다. 일본이 사과한 횟수보다 더 자주 사과를 부정하는 것이 문제이며, 과거사나 영토 문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법’에 관한 문제다. 한국의 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징용자 문제 등에서 일본에 불리한 판결을 내리는 데 대해 일본은(특히 오피니언 리더들이)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인 중에는 이를 언급하는 사람이 꽤 많다. 쟁점은 한국 판결의 맞고 틀리고가 아니다. 법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일본의 시각에서 보면 사후에 사정변경이 있었다고 해서 법을 고치거나 해석을 달리하는 한국의 정서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문제도 단기간에 이견을 좁히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 번째는 중국과의 관계다. 중국의 대두에 ‘위협’을 느낀다고 말하는 일본인이 부쩍 늘었다. 한국과는 분위기가 영 다르다.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중국이 강해지는 데 대해 실제로 두려움을 느끼는 듯하다. 한때 세계를 상대로 힘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힘의 무서움’에 더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중국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과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빼앗기게 된 데 대한 허탈함도 섞여 있을 것이다. 일본은 그런 중국으로 달려가는 한국을 섭섭하고 착잡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 문제는 친중이 곧 반일은 아니며, 한중일 삼국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풀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헌법 개정과 집단자위권 확보, 자위대 강화 움직임 등을 ‘군국주의’ ‘전쟁할 수 있는 나라’ 등으로 표현하는 데 대해 불만이 크다. 특히 한국 언론이 심하다고 비판한다. 일각에선 일본을 북한과 같은 수준으로 취급한다고 원망한다. 국내 문제는 국내 문제로 봐달라는 게 일본의 주장이다. 사실 일본 국민이 자유의사에 따라 변화를 추구한다면 이웃 나라가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한때 이웃 국가들에 고통을 준 전력이 있는 만큼, 일본은 이웃 국가들을 안심시킬 의무와 설명 책임이 있다. 국내 문제를 국제 문제로 키우는 것도 역사인식을 결여한 일본의 자업자득 아닌가.

이런 합병증 때문에 한일관계는 쉽사리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 원인을 제공한 일본을 두둔할 이유야 없지만 사실을 외면해도 해법 찾기는 힘들 것이다. 달라진 일본의 불편한 진실이다. 아쉬울 게 없으니 일본과는 담 쌓고 살자고 한다면 그 선택은 별개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결정은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과녁을 원래 위치로 옮기라고 계속해서 요구할 것인가, 궁수의 위치를 바꿀 것인가, 양쪽 방법을 모두 쓸 것인가,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인가. 어떤 질문도 대답이 쉽지 않다. 이래저래 피곤한 이웃을 만났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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