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데이비드 브룩스]기술관료제의 악몽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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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1990년대 초 헬무트 콜 독일 총리,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자크 들로르 유럽공동체(EC) 위원장 등은 권좌에 있으면서 마스트리히트 조약 협상을 통해 단일 통화를 만들어냈다. 당시 유럽의 공무원들은 스스로를 새로운 유럽의 건축가로 자부하며 흥분감에 싸여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도 있었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정상회의를 위해 모여 공동 성명을 발표했는데 각국의 언론 보도를 보면 12개의 전혀 다른 사건에 관해 읽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시 유럽은 법률적, 경제적으로 통합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공통의 언어는 없었다. 회의에서 지도자들은 ‘연방주의’를 수용했다. 그러나 그 단어는 영국과 독일에서 각각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그때 엘리트주의가 나타났다. 유럽의 기술 관료들은 뻔뻔스럽게도 정부는 그들과 같은 기술 관료에 의해 운영돼야 한다고 역사는 가르쳐왔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유럽 통합은 불투명해졌고 일련의 복잡한 임시방편들이 이어졌다.

유럽연합(EU)은 언어적, 문화적, 역사적 기반에 근거하지 않는 경제적, 법률적 상부구조를 짓는 시도였다. 그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초국가적이면서도 안전한 통치 기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통합 유럽을 위한 열망은 강하다. 특히 지도자 계층과 60세 이상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타고난 결함은 유럽의 통합 계획을 약화시키고 있다. 유럽 각국은 다양한 역사와 가치, 문화를 반영한 서로 다른 종류의 경제와 다른 종류의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있다. 다양한 경제 문화를 가진 각국의 통화를 하나의 통화로 통합하면 폭발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 순간에 도덕적인 연대가 유럽이라는 의사(擬似)국가를 단단하게 묶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리건 주에 사는 미국인은 그들의 세금이 애리조나 주에 사는 미국인들에게 가더라도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같은 운명을 가진 국민들이기 때문이다. 서독인들은 전 동독인들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기꺼이 지불했다. 그들 또한 같은 국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유된 일체감은 독일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심지어 프랑스인과 독일인 사이에도 없다. 지금까지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쉽게 유럽인이 됐다. 하지만 희생을 피할 수 없게 됐을 때 유럽인이라는 일체감은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혼란은 유럽 경제를 붕괴시키겠다고, 세계를 또 다른 글로벌 경기침체로 떨어뜨리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피상적인 수준에서 보면 실수는 부적절한 임시방편에 매달려온 현재의 유럽 지도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들은 역사, 언어, 문화, 가치를 의식하지 못한 채 그들이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고 믿는 오만한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기술 관료적인 마음 구조에서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방법으로 유럽을 세우는 것이 실수임에도 유럽인들은 지금 길을 반대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유로가 순식간에 무너졌다면 독일 마르크화가 강세를 보였을 것이다. 그러면 거의 모든 다른 통화는 급락하고 이에 따른 불균형은 글로벌 재난을 만들었을 것이다.

단기적으로 유럽중앙은행과 재정이 안정된 유럽 국가들, 미국은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매우 거대하고 고통스러운 행동을 취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잘못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 시간은 이 같은 결점을 타고난 구조를 만든 기술관료적인 마음 구조를 버리고 다양한 사회의 실체를 반영한 유럽을 건설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번 주 이코노미스트지에 실린 유럽중앙은행 직원의 말이 눈길을 붙잡았다. “유럽의 지도자들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어떻게 휩쓸려 들어갈 수 있었는지 항상 의문이었는데 이번 위기 속에서 실수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알 수 있었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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