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 종범갑(甲)! 별명 바꾼 ‘피켓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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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7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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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을 찾는 여성팬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촌철살인의 응원문구를 적은 ‘야구장의 색다른 맛’ 피켓 문화가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보고 있노라면 탁하고 무릎을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정도다. 스포츠동아DB
야구장을 찾는 여성팬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촌철살인의 응원문구를 적은 ‘야구장의 색다른 맛’ 피켓 문화가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보고 있노라면 탁하고 무릎을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할 정도다. 스포츠동아DB
야구장 피켓응원의 모든것
‘10번째 선수들’ 피켓에 사랑을 싣고…

▶ 내 마음을 훔친 너

여성팬이 몰고온 알록달록한 피켓 물결
미혼선수 겨냥 적극적인 사랑의 메시지

▶ 선수와 소통하고 싶다
“선수가 보고 웃으면 더 만들고 싶어져요”
기발하면 TV노출…대행 업체까지 등장

▶ 찍히면 뜬다
종범신(神)을 (甲) 착각…종범갑 새별명
남성엔 문구 바꿀수 있는 LED피켓 인기
‘모태 롯데’, 단 네 글자뿐이다. 그러나 롯데를 사랑하는 부산 팬들의 뜨거운 애정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연봉 수억 원을 받는 인기 카피라이터의 작품이 아니다. 프로야구가 열리는 전국 야구장에 가면 매일 만날 수 있는 주옥같은 응원 피켓이다.

전국 4개 구장을 가득 수놓고 있는 촌철살인 응원 피켓을 소개하려면 끝도 없다. ‘우리 아빠는 김현수라고 적고 내 사위라고 읽는다’, ‘내 마음까지 훔쳐간 대도 이대형’. ‘용규야, 우리 누나 너 때문에 시집 다 갔다’…. 최근 SK와 삼성의 선두다툼이 치열해지며 등장한 ‘동화형 우승해서 동찬이 용돈 주세요.’ 읽는 순간 웃음이 터지고 무릎을 탁 치게 되는 말 그대로 ‘명문(名文)’, 지금 야구장은 응원문구의 찬란한 경연장이다.

○여성관중 증가와 함께 시작된 피켓 열풍

오래전부터 야구장에는 피켓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다채롭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서울 종합운동장과 올림픽 공원 등지에서 프로야구, 농구 관중, 각종 공연 콘서트 관객들을 상대로 노점을 해온 김영순 씨는 “10여년전만 해도 여학생들이 예쁜 응원도구 들고 몰려드는 경기는 농구였다. 야구는 주로 직장인들이 소주 팩 몰래 사서 들어가곤 했었다. 2∼3년 전부터 야구장에 여성 관중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별의별 응원도구가 다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SK가 지난 2일 발표한 문학 홈경기 관중 성비 분석 자료에 따르면 평균 40% 이상이 여성이다. 2008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으로 이용규, 김현수, 김광현, 류현진, 윤석민 등 젊은 미혼 선수들이 아이돌 부럽지 않은 스타로 떠오르며 여성관중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농구장을 떠나있던 피켓물결은 야구장으로 몰아쳤다.



○‘TV에 나오는 응원피켓 만드는 법’

응원피켓은 이제 야구장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경기관람 이상으로 응원을 즐기며 자신의 마음을 맘껏 표현하는 도구로 피켓이 쓰이고 있다. 특히 케이블 스포츠채널이 하루에 4경기 모두를 중계방송하며 ‘기발한 응원피켓=TV 노출’이란 공식이 만들어졌다.

TV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잡히는 걸 즐기는 젊은 관중들은 더 열광적으로 정성껏 피켓을 만들기 시작했다. 2008년 SBS스포츠는 ‘오늘의 10번타자’라는 이름으로 특이한 응원도구 혹은 응원동작, 재미있는 피켓을 뽑아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관중들은 기대이상 열광적으로 이벤트에 참여했고 다른 스포츠채널도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이에 발맞춰 지난해 스포츠채널과 손잡고 ‘오늘의 최고 피켓’을 선정해 상품을 전달하는 공동 이벤트를 시작했다. 이 이벤트는 중계방송 채널과 관중, 시청자가 하나로 연결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관중들은 응원도 즐기고 최고의 피켓에 선정되기 위해 더 열광적으로 아이디어를 짜냈다. 방송사 역시 이벤트 진행을 위해 더 많이 카메라를 관중석으로 돌리고 있다.

더 예쁘고 재치 있는 피켓을 만들 수 없을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피켓 제작 대행업까지 탄생했다. 인터넷에는 ‘TV에 나올 수 있는 피켓 만드는 법’을 상세히 알리는 블로그가 인기를 끌고, 일정액을 지급하면 아이디어부터 제작까지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대행업까지 성행중이다.

물론 대다수의 팬들은 순수하게 피켓 제작이 취미가 된 경우다. 각 팀의 일부 열성 팬들은 1군 엔트리에 포함된 모든 선수들을 주인공으로 피켓을 제작할 정도다.

넥센의 팬인 강지혜(27) 씨도 1군에 있는 모든 선수들을 위해 피켓을 만드는 열성팬이다. 강 씨는 “‘국대정호’처럼 4글자로 거의 모든 선수의 응원 피켓을 만들었다. 어떤 선수는 하고 어떤 선수는 안하기가 미안해 다 만들게 됐다(오른쪽 두번째 피켓사진). 선수들이 피켓을 보고 활짝 웃을 때 가장 기쁘고 더 만들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며 미소를 지었다.

스포츠심리학 전문가인 신정택(동의대 태권도학과 교수) 박사는 “팬들의 피켓팅은 경기의 일부로 참여 하고 싶은 욕구라고 본다. 적극적인 응원 행위로 경기 중에 선수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영화 해운대를 보자. 롯데 이대호가 관중들과 언쟁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그 장면은 일종의 야유였지만, 팬들은 선수들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 피켓팅도 적극적인 의사소통 행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피켓열풍을 설명했다.

○응원피켓도 디지털 시대


2010년 응원피켓도 디지털 시대를 맞았다. 4월 잠실에 처음 등장한 전자피켓은 팬들이 원하는 다양한 응원문구를 LED액정화면에서 구현하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가장 큰 장점은 편리함. 그날 경기, 혹은 선수의 상황에 따라 미리 손쉽게 응원문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디지털 세대에게 안성맞춤이다.

디지털 피켓을 처음 생각하고 세상에 내놓은 주인공은 LED관련 제품 전문 생산업체 (주)루미코스의 이금병 상무다. LED피켓은 당초 선거홍보용품으로 제작됐다. 무게가 가볍고 두께가 얇으면서도 화재 및 감전의 위험이 없고 특히 눈부심 없이 멀리서도 잘 보이는 LED의 특성을 선거홍보에 이용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 승인이 늦어지며 제품화되지 못했다. 이 상무는 아이디어가 아까워 고심하다 프로야구 응원을 생각해냈고 올 시즌 개막과 함께 제품으로 만들었다.

이 상무는 “입소문을 타면서 프로야구 팬들이 많이 찾고 있다. 야구장을 시작으로 각종 공연장까지 쓰임새가 넓어지고 있다. 요즘에는 일본에서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피켓의 판매가격은 3만원에서 5만원 사이, 직접 피켓제작을 즐기는 여성 팬들에 비해 남성 관중들에게 더 인기가 높다.

○‘종범신에서 종범갑’으로, 별명까지 뒤바꾼 피켓인기

피켓의 인기는 국내 최고 스타 중 한명인 이종범에게 새로운 별명까지 선물했다. ‘양신’ 양준혁과 함께 지역 팬들에게 ‘신(神)’이라고 불리는 ‘종범신’ 이종범. 그러나 ‘바람의 아들 이종범(종범 甲)’이라는 피켓이 방송카메라에 잡힌 뒤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면서 ‘종범갑’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신(神)을 신(申)으로 착각한데 이어 결국 갑(甲)으로 잘못 쓴 한 팬이 전한 큰 웃음이었다. ‘종범갑’은 이종범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채종범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해 ‘종범을’이라는 별명으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프로야구의 일부가 된 피켓응원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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