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마당]‘고정명찰’은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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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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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초중고교에서 학생의 명찰을 교복에 바느질해 붙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런 관행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25일 시정을 권고했는데요, 아무나 학생의 이름을 알 수 있어 사생활의 자유를 제한하고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이유입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에는 동의하지만 일률적으로 기준을 정할 게 아니라 학교 자율에 맡겨 학교와 학생, 학부모가 논의를 거쳐 정하고 따르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다] 청소년도 사생활 존중받아야
탈선예방? 교복 벗으면 그만… 부착이유 안돼



헌법 제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속에서 다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 도출된다는 데에 판례와 학설에서 이설이 없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란 자신에 관한 개인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떤 범위까지 알려지고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그 정보 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말한다. 이때의 ‘개인정보’란 “개인의 신체, 신념, 사회적 지위, 신분 등과 같이 개인의 인격 주체성을 특징짓는 사항으로서 그 개인의 동일성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일체의 정보”를 말한다고 헌법재판소가 판결문에서 상세한 설명까지 곁들인 바 있다.

얼마 전 대구지역의 한 시민운동가가 그 지역 6군데 중학교에서 교복에 이름표를 바느질 등으로 고정시키도록 한, 소위 ‘고정명찰’을 달도록 강제하는 데 대해 학생들의 인권 침해를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학생들이 고정명찰로 인해 학교 밖에서까지 본인의 이름이 외부에 과도하게 노출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당한다는 것이다. 해당 중학교에서는 고정명찰이 교복 분실 방지, 명찰 파손 예방 등을 위해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도 학생의 본분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변했다는 전언이다. 이에 대해 지난주 인권위는 고정명찰로 인해 학교 밖에서까지 명찰을 착용하도록 하는 일이 학생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각종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등 그 부작용이 매우 크다면서, 시정을 권고했다. 환영할 만한 결정이다.

관련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고정명찰이 물건 강매나 범죄행위 등에 이용된다는 전화가 벌써부터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교육과학기술부도 이 점을 인정한 바 있다. 고정명찰이 청소년 탈선에 억제효과가 있다는 항변에도 찬성할 수 없다. 탈선을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고정명찰이 부착된 교복만 벗으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히려 이런 사고 자체가 청소년을 헌법상 기본권을 향유할 수 있는 한 사람의 떳떳한 국민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훈육과 계도의 대상으로 대하는 것으로 느껴져 씁쓸하다. 고정명찰 부착 여부를 학교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청소년으로부터 박탈할 수 있는 위헌적 조치라면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시행 여부를 결정할 자율사항이 될 수 없다. 영국이나 미국 등의 사립학교도 학생에게 교복을 입게 하지만 교복에 바느질 등으로 명찰을 고정하게 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지 않은가. 헌법 제17조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의 주체로 ‘국민’을 규정하고 있고, 청소년도 어엿한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아니다] 교육효과 따져 학교가 결정을
학생지도에 효과… 학교운영위-학생 같이 논의해야



국가인권위원회가 2005년에 교사의 초등학생 일기장 지도를 인권침해라며 개선하도록 권고한 데 이어 최근에는 학생의 명찰을 교복에 고정해서 부착토록 하는 조치는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내렸다. 학교 교육과 관련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 및 권고가 나오면 학교 현장은 당혹감과 함께 학생지도에 어려움을 느낀다.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학생이 “지금 배가 고파 매점에서 뭘 사 먹고 올 테니 보내 달라”고 하자 교사가 “지금은 수업시간이니 쉬는 시간에 다녀오라”고 했다. 학생은 “배가 고파서 수업을 못 받을 지경인데, 매점에 보내주지 않는 것은 인권침해이다. 빨리 보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단편적인 사례이지만 학교 현장에서 인권과 교육의 충돌을 잘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다.

중등교사로 30여 년 재직한 나도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론이 없다. 다만 학생 인권과 교육 현실에 괴리가 생길 때 교육적인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성명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보호 대상이 되는 개인정보에 해당되고, 고정명찰 부착 강요로 학생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름이 공개돼 범죄에 노출될 염려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학생이나 학부모의 입장에서 고정식이 아닌 부착식 명찰로 바꾸면 매번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번거롭고, 부착식 아크릴 명찰은 움직임이 많은 학생을 다치게 할 우려가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교복 분실이나 명찰 파손을 막기 위해, 학생이 학교 밖에서 본분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명찰이 필요하다는 학교의 주장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교복과 명찰 형태는 학교운영위원회 등 학부모의 의견 수렴과 학교의 의사 결정을 거쳐 정한다. 학생의 학교생활 및 교칙은 교육 구성원 간의 충분한 논의 속에 학교 실정에 맞게 규정한다는 점에서 인권위가 일률적으로 기준을 정하는 일은 오히려 1만1000곳이 넘는 학교의 현실과 괴리되고 학교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현상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 명찰의 고정 부착 여부는 학생을 포함한 학내 구성원의 민주적 절차에 따라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정하고, 이 기준을 학생 스스로 지키려 노력하는 방식이 가장 바람직한 형태이다.

차제에 교육 당국도 학생에게 인권교육 관련 자료를 개발하여 보급해야 한다. 인권의 범위를 학생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해야 하고, 그에 따른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교육 문제를 판단할 때 학생 인권과 더불어 학교 현실 및 교육적 측면을 동시에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를 다시 한 번 기대한다.

이원희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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