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범죄 조사 앞장선 쓰치야 고켄 前일본변협회장

  • 입력 2007년 4월 14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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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 문서창고 조사 이뤄지면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 쏟아질것”

“정부의 서류창고를 조사하면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가 얼마든지 나올 것이다. 일본 정부가 조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증빙문서가 나올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겠는가.”

731부대 세균전을 비롯한 과거 일본군의 만행을 배상하라며 국가배상청구소송 등의 변론활동을 적극적으로 해 온 쓰치야 고켄(土屋公獻·84·사진) 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은 “철저한 조사만이 군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12일 오후 그가 대표로 있는 법률사무소에서 1시간여 동안 인터뷰를 했다.

쓰치야 변호사는 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일본 전쟁범죄의 진실을 조사하기 위해 한국과 북한만 9차례 방문했으며 평화헌법 개정 반대운동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해 왔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군위안부 연행의 강제성을 부인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인은 물론 필리핀 중국 대만 출신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직접 생생하게 들었다. 위안부는 일본군의 명령과 압력으로 해당국 경찰의 손에 강제 연행됐다. 길 가는 도중에 납치된 피해자도 있고 끌려가서 거세게 저항하다 살해된 위안부도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을 직접 들어보면 거짓말이라는 의심은 추호도 들지 않는다.

일본정부는 단지 군위안부 16명의 증언만 듣고도 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자 1993년 고노(河野)담화를 발표하고 조사를 중단했다. 이때 조사를 계속했더라면 납치, 감금, 폭행 사실이 더 명확히 밝혀졌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군위안부 강제연행을 뒷받침하는 문서가 없다고 했다.

“일본정부는 미군이 상륙하기 전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문서 대부분을 불태웠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은 많다. 그러나 후생노동성 방위성 경찰 등의 문서 창고를 찾아 보면 군위안부 강제연행을 뒷받침할 문서가 아직 남아 있을 것이다. 국회도서관에 전문국(局)을 설치해 자료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이제는 문서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일본정부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설치해 군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정부가 할 일을 민간으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정부는 먼저 사실을 규명한 뒤 성의 있게 사죄해야 한다. 군위안부 피해자들이 돈을 원해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막대한 국방비에 비하면 보상금은 많은 돈이 아니다.”

―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 문제에서 일본의 사법부는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사법부는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사실관계는 대부분 인정한다. 이런 점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려는 행정부보다 낫다. 그러나 사법부도 시효와 당시 관련법 등을 이유로 정부의 배상책임을 부인한다. 사법부 차원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정치권이 특별법을 만들면 된다.”

―일본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강요로 오키나와(沖繩) 주민들이 집단 자살한 내용을 교과서에서 수정하도록 해 물의를 빚었는데….

“은폐는 일본 정부의 체질이 되어가는 것 같다. 잘못된 과거를 숨기고 미화하는 것은 국익(國益)이 아니라 국욕(國辱)이다.”

―아베 정권은 개헌 절차를 규정한 국민투표법을 제정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아시아 이웃나라들이 그나마 일본을 신용할 수 있었던 것은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제9조 2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을 없애면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을 다시 위협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절대로 평화헌법을 개정해서는 안 된다.”

―도쿄(東京)대 재학 중 징병 당했다고 들었다.

“대학생 때가 아니라 고등학생 때인 1943년이었다. 미군과 격전을 벌인 오가사와라(小笠原)제도 지치지마(父島)에서 해군으로 참전했다. 포로로 잡힌 미군을 직접 처형하라는 명령을 받은 적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나보다 검도 고단자인 다른 병사가 미군의 목을 베었다. 죽은 포로는 고향집에서 홀어머니가 기다리는 22세의 미국 청년이었다. 그의 목에서 피가 솟구치자 나머지 병사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병사 한 명 한 명은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지만 전쟁과 군대라는 분위기에 휩쓸리면 이처럼 ‘악귀’가 된다. 목을 벤 일본 병사는 미군에게 체포되기 전 자살했다. 그가 없었더라면 내가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중국 대륙 같은 곳의 침략부대에 배치됐더라면 다른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살인, 성폭행, 방화, 약탈 같은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이를 피했으니)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았던 편이다. 두 번 다시 이런 불행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쓰치야 고켄 변호사는

△1923년 출생 △1943년 시즈오카고등학교 입학(4월), 해군 입대(12월) △1946년 복학 △1948년 시즈오카고등학교 졸업 △1952년 도쿄(東京)대 법학부 졸업 △1960년 변호사 등록 △1979년 최고재판소 산하 사법연수소 형사변호 교관(3년간) △1991년 일본변호사연합회 부회장(1년간) △1994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2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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