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권장도서 100권]<48>고향-이기영

  • 입력 2005년 5월 28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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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의 지식층 청년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지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였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사회주의와 프롤레타리아 혁명 사상을 수용해 이를 적극적으로 문학 활동에 접맥하기 시작했다. 이 사상은 초기에는 식민지 지배체제에 대한 민족적 저항 의식의 표출로 문학에 수용되었으나 차츰 마르크스주의와 결부되면서 계급적 투쟁 의식을 강조하는 조직적인 활동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실천의 구심점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카프)이 자리한다. 계급문학운동은 이 단체를 중심으로 문학운동의 집단적 실천과 그 공동체적인 연대 의식을 강조했다. 이러한 문학운동의 핵심을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농민문학론이며 그 대표적 작가가 민촌 이기영(民村 李箕永)이다.

189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이기영은 1924년 ‘개벽’지 현상모집에 단편 ‘오빠의 비밀편지’로 당선된 후 1925년 카프에 가담했다. 단편소설 ‘민촌’(1926) ‘농부 정도룡’(1926) ‘서화’(1933), 장편소설 ‘고향’(1933) ‘신개지’(1938) ‘인간수업’(1941)을 발표하였다. 그는 광복 직후 월북하여 장편소설 ‘두만강’을 발표하였으며 북한에서 요직을 거치다가 1984년 사망했다.

이기영은 장편소설 ‘고향’에서 농민의 경제적 몰락 과정과 삶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했다. 작품의 배경인 원터 마을은 일제강점기 농촌의 현실을 전형적으로 드러낸다. 읍내에 철도가 놓이고 공장이 들어서자 농촌 공동체의 구심점이 흔들리고 농민은 대부분 토지를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한다. 물가의 급격한 상승에도 불구하고 미곡의 가격은 제자리를 맴돌아 농촌 경제는 파탄을 맞는다.

이러한 농촌의 현실 속에 새로 성장하는 농민의 계급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김희준이라는 매개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의 각성을 의도한다. 주인공은 추상적 관념적 인물이 아니라 방황과 갈등을 겪는 살아있는 인물이다. 그는 농촌 생활의 고통을 겪으면서 무능력에 좌절하기도 하고, 아내와의 애정 없는 생활에 방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마을 사람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가 야학을 열고 두레를 조직하고 농민을 계몽한다. 이에 따라 자신의 삶의 고통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원터 마을 사람들이 김희준의 지도에 의해 힘을 합치게 되고, 소작료 인하 투쟁에도 적극 동참하게 된다.

이처럼 ‘고향’은 근대화의 와중에서 전통적 사회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그 속에서 삶의 고통을 참아내며 살아가는 농민의 생활과 의식의 성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작가는 지주를 등에 업고 농민을 착취하는 마름 안승학과 그에 의해 고통 받으면서도 저항하는 마을 사람의 대립을 기본 축으로 하여 다양한 삽화를 제시하면서 농촌의 현실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 결과 ‘고향’은 일제강점기 농민들의 삶과 그 풍속의 재현을 가능하게 해 주었으며 농촌의 현실을 전형적으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고향’은 계급문학운동의 대표적 성과이면서 동시에 일제강점기 리얼리즘 문학의 최고봉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양승국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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