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류재갑/진정한 ‘민족공조’를 위하여

  • 입력 2004년 5월 16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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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기각으로 결론나면서 다시 집무를 시작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상생과 화합의 정치’와 ‘경제 살리기’를 주문하는 소리가 높다. 이 기회에 ‘상생과 화합’ 정신이 북한에도 흘러들어가 4월 22일 용천역 폭발참사 이후 한국인들이 보여준 동포애가 ‘동토의 땅’을 녹이고, 이를 계기로 ‘수령 절대주의 정권’의 이성적 선택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용천역 폭발참사, 제14차 남북장관급회담, 6자회담을 위한 베이징 실무급 회의가 진행됐고, 남북장성급회담(5월 26일)과 제10차 이산가족 상봉 및 6자회담(6월 말) 등이 예정되어 있다.

▼용천역 참사 南北상생 필요성 절감▼

그런 가운데 용천역 참사에서 보여준 남측 동포들의 북측 동포 지원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진정으로 뜨거운 동포애를 발휘했다. 이를 계기로 진정한 ‘민족 공조’의 틀이 생겨났으면 하고 기대해보지만 어딘지 씁쓸한 마음을 떨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용천역 참사를 보면서, 그래도 북한의 물류중심지 가운데 하나라는 도시의 기본 인프라가 그토록 허약할 수 있으며 재난구조와 사후대처가 그토록 속수무책일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 동포들이 사람답게 살려면 북한의 물질적·정신적 기반을 근본부터 새로이 재건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엄청난 과업을 누가 지원해 줄 수 있겠는가. 미국과 일본, 중국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이들의 도움은 ‘임시’ 수준을 넘기 어렵다. 북한의 기본적인 인프라 재건을 장기적으로 도울 수 있는 나라는 결국 한국밖에 없다. 북측이 허심탄회하고 진솔한 자세로 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그리도 어려운 것일까.

용천역 참사에서 보여준 북한의 폐쇄성과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은 아직 남북한 간에 ‘상생과 공존’의 길이 멀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북한은 아직도 남측의 동포애적인 지원마저 수용할 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함을 드러냈다. 만일 북한의 문호만 열렸어도 남한은 늦어도 한두 시간 안에 북한의 어느 곳이든 필요한 장비와 구호물자를 중대형 헬기로 전하는 ‘평화 수송작전’을 전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슴 아프고 아쉬울 따름이다.

제14차 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은 우리측이 제안한 서울과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남북 사회문화분과위원회 구성·운영을 거부하고 마지막 순간에야 겨우 장성급 회담을 수용했다. 남측에 대해서는 한미합동군사연습 중지와 미국의 이지스함 동해 배치 철회 등의 요구를 비롯해 남측 범민련 관계자의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 처벌 금지, 탈북자의 미국 방문 및 인터넷 방송 금지 등 내정간섭적인 요구를 멈추지 않았다.

북한이 차라리 은둔의 땅이라면 신비로움이라도 풍기겠지만 인위적인 이데올로기의 장막으로 가로 막힌 질곡의 땅이다. 북한정권은 자신의 주민을 핍박과 기아 속에 팽개쳐둔 채 남한을 향해 줄기차게 이데올로기성 ‘민족 공조’와 계급적 민족의식을 선동하고 있다. 그들은 ‘민족은 생물학적 표징에 의하여 구분되는 인종과 다르고’(정치사전, 415쪽), ‘사회주의적 민족은 노동계급이 주권을 잡고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에 기초하여 노동자 농민 근로인텔리 등이 (…) 서로 협조하고 방조하는 사회주의적 사회관계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민족’(사회과학강의, 415쪽)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데올로기 장벽에 갇힌 상호주의▼

북한이 주창하는 ‘민족 공조’는 동포애적 호혜성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 적화 혁명을 위한 통일전선책략의 일환일 뿐이다. 상생과 공존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제는 북한이 허심탄회하고 진솔하게 이데올로기적 장벽을 허물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호혜적 상호주의에 입각한 상생과 평화공존을 위한 민족공조를 이룰 수 있다. 이 길만이 북한을 살리고 한민족이 사는 길이다.

류재갑 경기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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