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미은/정보화 시대의 사생활 보호

  • 입력 1998년 12월 30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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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 시대. 슈퍼마켓에 놓여있는 배추 한포기와 달리 정보와 지식은 그 자체로는 별의미가 없다.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전달될 때만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 정보요 지식이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개인이 자유롭고 편리하게 필요한 지식을 얻고 그 정보는 공공의 소유물이 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종종 두 갈래의 길을 간다. 정부와 거대기업이 소유한 정보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기보다는 소유자의 이익을 위해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

▼개인정보 상품화 성행

신용카드의 사용내용이나 슈퍼마켓에서의 물품 구입내용까지 시시콜콜한 개인의 사생활은 이미 하나의 상품으로 변했다. 고객의 신상명세가 다른 회사에 팔리는 경우가 빈번하고 인터넷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적어 넣은 여러가지 개인 정보는 값진 상품으로 변해 다른 수요자에게 넘어간다.

벤담의‘원형감옥(파놉티콘·panopticon)’개념은 기술발달로 이루어진 정보화 사회에서의 개인의 자유에 관해 의미심장한 의미를 던져준다. 중앙에 세워진 높은 원형감옥에서는 감시자가 죄수들을 24시간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감시탑의 불은 꺼져 있어 죄수들은 감시자를 볼 수 없다. 그러니 실제로 감시자는 죄수들을 24시간 감시할 필요도 없다. 감시의 눈길이 있건 없건 간에 입소자들은 늘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한 사생활 침해는 벤담의‘파놉티시즘’을 단순한 상상이 아닌 현실로 보게 한다. 개인의 신상명세가 담겨있는 데이터베이스들은 정보화 시대의 각광받는 상품이 되고 있다.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면 특정 집단의 신상명세도 뽑아낼 수 있다. ‘연봉 4천만원 안팎의 남자로서 골프채를 소유하고 있고 최근에 이사를 한 사람들…’이런 식의 자료를 얼마든지 뽑아 낼 수 있다.

최근에 넷스케이프사를 소유하게 된 미국 최대의 인터넷 서비스 회사인 아메리카 온 라인의 회장은 95년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는 가입자들을 포장해서 다시 되파는 것입니다.”

한달에 20달러 정도를 내고 인터넷 서비스를 받는 가입자들 자체가 그 회사의 ‘자산’이라는 말이다. 그 가치있는 ‘자산’이 회사 안에서만 머물라는 법은 없다. ‘포장’되어서 다른 회사로 넘어가게 된다. 상업방송의 진정한 목적은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에게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을 한 단위로 묶어 광고주에게 파는 것이라는 현실적인 시각과 비슷하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대표인 빌 게이츠는 자신의 저서에서 미래의 정보사회가 보장해줄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기업들이 무차별적인 광고로 소비자들을 괴롭히는 시대는 지나고, 미래사회에서는 개인이 각자의 취향에 맞게 자신의 컴퓨터를 프로그램하게 되고, 그 컴퓨터는 인터넷을 통해 개인이 원하는 상품만을 골라온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말하는 ‘소비자들의 천국’이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런 미래가 ‘소비자들의 천국’이 아니라 ‘시민들의 지옥’이 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빌 게이츠가 설파하는‘소비자들의 천국’에서는 거대기업이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과 품위를 일련의 주민등록번호와 신용카드번호 정도로 낮추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개인의 일거수일투족, 특히 구매와 관련된 일련의 정보들이 다시 상품으로 포장되어 이곳저곳으로 팔리는 사회가 장밋빛일 수만은 없다.

일상생활에서 몇가지 물건을 사는 개인의 입장으로서는 이런 데이터베이스들의 위력이 실감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의 신상에 관한 정보가 거대기업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축적되고 있는 현실 앞에서 “난 괜찮아”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대기업의 전횡 막아야

정보화 시대의 정부의 역할은 중립적인 심판관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는 시각도 있다. 또한 인프라 구축 등 정보기술 발전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전까지는 개인의 권리가 무시당하거나 짓밟히는 경우에 국가가 개입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컴퓨터 네트워크 시대에 일어나는 정보 침해나 개인 정보의 상품화 문제는 국가보다는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발생하는 사생활의 위협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적이건 편리함을 위해서건 개인이 기꺼이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내용을 마음대로 이용하거나 팔아 넘기는 사생활의 상품화에 대해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

강미은(美클리블랜드주립대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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