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조수진]유라시아 대륙 횡단열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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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7월 서울에 도착한 프랑스 종군기자 막스 올리비에 라캉은 폐허가 된 서울역을 둘러봤다. 난장판 속 역무실에서 온전한 건 기차표를 넣어두는 캐비닛 하나가 전부였다. 한 주먹 꺼내 행선지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파리행! 서울에서 신의주∼단둥∼펑톈(선양)∼하얼빈∼모스크바를 거쳐 파리로 이어지는 대륙횡단 기차표였다. 1906년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경의선(499km)이 개통된 이래 끊어진 구간을 계속 연결해 1927년부터는 유럽까지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러시아 동단(東端)과 맞붙은 한반도는 1911년 압록강 철교 완공 뒤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이자 유럽으로 가는 아시아 쪽 입구였다. 섬 아닌 섬으로 전락한 건 분단 이후다. 바다를 건너간다는 ‘해외(海外) 여행’이란 단어도 ‘섬’이란 인식에서 나왔다. 도서학(Islandology) 권위자인 마크 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섬은 지리적 개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북한의 반대로 3년 연속 무산됐던 우리나라의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회원 가입이 7일 확정됐다. OSJD는 유라시아 횡단 철도가 지나는 북한 중국 러시아 몽골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28개국으로 구성된 기구. 각 나라와 일일이 협상을 하지 않고도 경부선(부산∼서울·423km)과 경의선(서울∼신의주·499km)을 잇고 여기에 나진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9288km를 달리는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연결할 길이 열리게 됐다.

▷1883년 처음 기적을 울린 뒤 프랑스 파리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달렸던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1977년 ‘역사의 터널’ 속으로 사라졌다. 비행기의 비약적인 발달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물류는 사정이 다르다.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철도를 이용하면 해상보다 7600km나 짧아져 운송 기간, 비용이 크게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시간이 걸리면 어떠랴. ‘자작나무들이 한 방향으로 늘어선’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질러 파리까지 열차를 타고 가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멋진 일이다.
 
조수진 논설위원 jin0619@donga.com
#유라시아 횡단열차#유라시아#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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