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해외 투기자본 먹튀에 맞설 ‘경영권 방패법’ 시급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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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투기자본 엘리엇이 경영권 방어가 허술한 한국 기업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에 나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29일 주주총회를 열어 인수합병 승인에 대한 표결을 실시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그룹 계열사 간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해 지배구조를 단순하게 한 뒤 현대모비스를 중심으로 자율자동차 등 미래자동차 개발에 주력할 계획이다. 대기업에 비판적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이런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바 있다. 그런데 엘리엇이 주주들이 손해를 본다는 이유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썩은 고기를 먹는 대머리독수리(Vulture)에 빗대 ‘벌처 펀드’로 불리는 국제적 투기자본들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엘리엇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궁지에 몰린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자동차 부품 자회사 델파이를 다른 헤지펀드와 공동으로 인수했다. 회사를 청산해 부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GM을 협박해 막대한 이익을 챙긴 뒤 공장을 중국으로 옮겨 미국 일자리 3만5000개를 날렸다.

근래에는 한국 기업들이 소버린, 헤르메스, 칼 아이컨 등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이들은 SK, 삼성, KT&G 등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해당 기업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식을 사 모아 주가가 오르면 빠져나가 막대한 차익을 올렸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피해를 봤다며 한국 정부에 7000억 원대 보상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은 나라에 따라 대주주나 경영진에게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 기존 주주들이 시가보다 싼 가격에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포이즌필, 주요 경영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제도 등의 방어 장치를 두고 있다. 이런 제도가 없는 한국은 투기자본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거꾸로 정부 여당은 외부세력이 경영권 공격을 쉽게 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엘리엇 같은 투기자본의 공격을 막을 방패장치를 만든 뒤 상법 개정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
#엘리엇#벌처 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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