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주성]G20회의,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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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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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11월에 열리는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단순한 국제행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표면적으로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의 출구전략이나 금융개혁 등 세계경제 현안을 조율하는 일이 주요 의제지만 저변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등 서구 선진국 중심으로 움직이던 세계 경제질서의 변화라는 흐름이 깔려 있다. 한국은 의장국으로서 의제를 설정하고 합의사항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주최국으로서 다양한 국가 홍보의 기회를 갖는다.

거대담론에 묶여선 실익 어려워

당연히 신나는 일이지만 두 가지 모두 어려운 과제다. 정부가 홍보하듯이 이번 회의를 계기로 한국이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 창출의 주역이 되면 좋겠지만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드물다. 미국의 힘을 빌려 회의 주최국이 됐고 결국 우리 역할은 미국의 들러리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예전의 국제회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신흥시장 국가가 국제사회의 규칙을 결정하는 정례화된 모임에 본격적으로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다. 개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향해가는 우리에게 이번 회의는 국가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실익을 실현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회의의제 자체를 놓고 보면 우리 역할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국제 협력이 어차피 쉽지 않은 데다 힘 있는 국가의 의도에 끌려가기 쉽기 때문이다. G7에서 G20으로 옮겨가는 핵심 단면은 중국의 부상이다. G20 의제 설정이 어쩌면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줄다리기일 수 있다. 무역 불균형과 환율 조정은 두 강대국의 힘겨루기 영역이다. 금융규제 개혁이나 국제기구 개편은 미국의 기득권이 첨예하게 달려 있는 문제다.

오바마 대통령과 월가의 싸움인 은행세를 국제공조로 푸는 일도 소설 같은 얘기다. 국내 정치와 밀접히 연결된 재정제도는 어차피 국제협력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출구전략 공조도 보호주의를 배격하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세계 금융시장의 통합을 감안할 때 금융규제의 원론적 조율, 국제기구의 지배구조 개선 및 구제금융의 제도화 같은 것이 G20 회원국이 합의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의제다.

정부 역시 의제 설정과 관련된 이런 한계를 잘 알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며 실익을 챙긴다는 유혹이 들겠지만 효과는 불확실하다. 차라리 국제사회에서 독자적 위치 설정을 실험해 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가교 역할에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한다. 말은 쉽지만 전략을 짜기 어렵다. 기후변화나 빈곤국 지원 문제는 우리가 적극적인 규칙 제정자가 되기 어렵다.

발전모델 수출 등 내실있게 준비를

이보다는 개도국의 역할 모델로서 한국의 발전 과정을 모형화하는 일이 실익이 클 것이다. 주최국의 이점을 살릴 수 있고 자연스러운 국가 홍보도 된다. 문제는 이 또한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 주도로 어쭙잖은 성공 모형을 급조해 보았자 별 감동이 없을 것이다. 남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한국이 언제 어떻게 성공했고 또 실패했느냐에 대한 객관적 서술이다. 한국사례 자체가 아니라 범개도국 모형이 될 수 있는 공식이 흥미롭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 스스로에 대해 공부해놓은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G20 정상회의는 가시적인 횡재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줄 것이다. OECD 가입으로 선진국이 된 듯이 우쭐거리다 된서리를 맞은 것이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정상회의 의제와는 별도로 우리 자신의 의제를 생각해 볼 때다.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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