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신간]한국문학과 결혼한 폴란드 여인들

  • 입력 2005년 2월 2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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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작고한 할리나 오가렉 최 교수(왼쪽). 그로부터 한국어문학을 배운 직계 제자인 에바 리나제흐스카 바르샤바대학 교수(가운데)와 안나 이자벨라 파라도브스카 박사(오른쪽)는 서울에서 한국어 문학 박사가 된 첫 세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작고한 할리나 오가렉 최 교수(왼쪽). 그로부터 한국어문학을 배운 직계 제자인 에바 리나제흐스카 바르샤바대학 교수(가운데)와 안나 이자벨라 파라도브스카 박사(오른쪽)는 서울에서 한국어 문학 박사가 된 첫 세대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한국어와 결혼한 여인.’ 지난해 11월 작고한 폴란드 바르샤바대 한국어문학과 할리나 오가레크 최 교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폴란드에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알리기 위해 평생 애써 온 그가 숨지기 전 유고로 남긴 ‘한국현대문학’이 제자에 의해 빛을 보게 돼 화제가 되고 있다. 오가레크 최 교수에게 연구 지원을 해 온 대산문화재단은 그의 제자인 크리스토프 야나샤크 바르샤바대 한국어문학과 교수가 유고의 최종 교정을 마무리 지어 4월 폴란드의 동양학 출판사 디알로그에서 책으로 출간한다고 1일 밝혔다.》

오가레크 최 교수는 73세로 숨지기 전 천식과 백내장 등으로 오래 고생했으나 생애 마지막 원고로 ‘한국고전문학’과 ‘한국현대문학’을 집필했다. 이 두 권의 책은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문학의 역사를 포괄하는 내용이다. ‘한국고전문학’은 그가 최종 교정까지 마무리 지어 숨지기 전 출간됐지만 ‘한국현대문학’은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에 따라 그에게 한국어를 배워 2002년 폴란드에서 처음 한국어문학 박사가 된 야나샤크 교수가 “한국과 폴란드의 다리가 돼 온 선생님의 유작을 마무리 짓겠다”며 팔을 걷고 나선 것. 현재 바르샤바에는 현지 공장을 세운 대우자동차의 영향력에 힘입어 설립된 세종대왕고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 학교는 오가레크 최 교수의 역저들을 정식 교재로 채택할 예정이다.

한편 동화작가인 오가레크 최 교수의 외동딸 안나 코르빈 코발렙스카 씨가 남북한과 기구한 인연을 나눈 어머니의 일생을 전기로 쓰기로 했다. 이 전기가 나오면 한국외국어대 동유럽발칸연구소의 최성은 전임연구원(34)이 한국어로 번역할 예정이다.

오가레크 최 교수는 폴란드에 유학 왔던 북한 학생과 결혼해 1957년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대에서 한국문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1962년 북한이 사실상의 외국인 추방령을 내림에 따라 오가레크 최 교수는 북한인 남편과 생이별한 후 바르샤바로 돌아갔다. 그는 평생 재혼하지 않은 채 북한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딸 코발렙스카 씨와 함께 살면서 한국의 신화 설화 전설 종교 연극 문학 등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1989년 한국이 폴란드와 수교한 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며 연세대 러시아문학과의 최건영 교수와 함께 폴란드인들을 위한 ‘한국어 1, 2’ 교과서까지 썼다. ‘춘향전’부터 한말숙의 ‘아름다운 영가’, 최인호의 ‘가면무도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국 작품을 폴란드어로 번역했다.

폴란드 유학 시절 오가레크 최 교수를 여러 번 만났던 최 연구원은 “오가레크 최 교수님의 어머니 역시 문학에 조예가 깊어 동화작가로 활약했다”며 “교수님의 딸도 외국인인 리투아니아 청년과 결혼했는데, 교수님은 딸 부부와 함께 살면서 깊은 애정을 베풀다 가셨다”고 소개했다. 그는 딸이 한국에 가서 살려고 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초등학생인 외손녀 마야 양에게는 직접 한국 동화를 읽어 주며 한국어를 가르쳤다.

한편 오가레크 최 교수 혼자서 바르샤바대 한국어문학과를 이끌었으나 지금은 야나샤크 교수 외에도 서울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돌아간 에바 리나제흐스카 씨와 귀국할 예정인 안나 이자벨라 파라도브스카 씨 등 직계 제자들이 교수로 임용돼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한층 더 충실하게 연구할 수 있게 됐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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