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식 展 “예술은 평형이다” 老화백의 고백

  • 입력 2004년 6월 15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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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식 작 ‘발’(拔·1973년). 직사각형의 이성적이고 차가운 이미지가 충동적이고 따뜻한 필획과 만나 서로 긴장하면서 팽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사진제공 덕수궁미술관
정점식 작 ‘발’(拔·1973년). 직사각형의 이성적이고 차가운 이미지가 충동적이고 따뜻한 필획과 만나 서로 긴장하면서 팽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사진제공 덕수궁미술관
‘이 부조리에 얽혀 있는 인생에 평형을 부여하는 일. 이 이상의 예술을 우리는 원치 않는다.’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서양화가 정점식 전시회의 한 작품 옆에는 이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작가가 혼신을 다해 내뱉은 언명(言明)과도 같은 이 말 한마디에는 여든일곱 생애를 오로지 그림만을 끌어안은 채 고민하며 살아왔던 노화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정 화백의 생애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평형’ 혹은 ‘긴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표작 ‘발’(拔·1973년)을 보자. 도형의 엄격함이 주는 이성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들이 필획이라는 충동적이면서도 따뜻한 이미지들과 서로 긴장하면서 팽팽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부덕(婦德)을 위한 비(碑)’(1968년)나 ‘하경(下鏡)’(1973년) 같은 작품에선 추상적이면서도 구상적이고, 이야기가 숨어 있는 서사적 요소들이 섞여 긴장을 이룬다.

권옥연 전혁림 한묵에 이어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올해의 작가’ 네 번째 주인공인 정점식은 굴절 많은 근현대사를 거치며 오로지 예술의 한 길만 걸어 온 원로화가다.

그에게서 얻는 교훈은 선구적 실험정신이다. ‘꽃’이나 ‘정물’을 담백한 색채로 아름답게 그리던 화풍이 지배적이던 광복 직후 화단에서 그는 엄격한 조형미로 과감하게 추상을 시도한 선구자다.

서구 추상의 출발이 그랬던 것처럼 정 화백의 1950년대 추상작업도 기존의 전통과 질서에 대한 ‘부정(否定)’,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부정’, 스스로에 대한 ‘부정’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1917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1930년대 대구 근대 화단의 선배들을 통해 유화를 접한 그는 일본 교토로 건너가 회화전문학교에 다니면서 일본의 미술계를 경험했다. 2차 세계대전 끝자락에 전쟁을 피해 일자리를 찾아 하얼빈으로 갔다가 광복 후 대구로 돌아온 뒤 1983년 은퇴할 때까지 계명대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이번 전시는 1940년대 하얼빈 체류기의 드로잉부터 2004년 근작까지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회고전이다. 8월 8일까지. 02-779-5310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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