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동인의 業]〈10〉하루키 “매일 20장씩 달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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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매년 10월에 발표되는 노벨 문학상은 올해 수상자 없이 지나갔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이 잇단 추문으로 선정 자격 자체를 박탈당한 탓이다. ‘뉴 아카데미’라는 단체에서 노벨 문학상이 없는 올해 한시적으로 ‘대안문학상’을 주겠다며 4명의 후보를 발표했는데 그중 한 명이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다. 하루키는 후보를 사양했지만 그가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1949년생으로 내년에 만 70세, 작가 데뷔 40년을 맞는 그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하루키 신드롬’이란 말까지 있을 정도다. 작가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지금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에너지의 근원은 어디일까.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란 책이 있다.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좋은 책이다. 하지만 제목에 명시되어 있듯 ‘직업’의 관점에서 봐도 충분히 유익하다. 책에는 하루키의 직업관이 또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중 인상적인 것 세 가지만 꼽아본다.

첫째, 직업은 우연하게 결정된다. 하루키는 1978년 4월 어느 쾌청한 날 프로야구 개막 경기를 구경 갔는데 응원하는 팀의 첫 타자가 2루타를 날리는 순간 아무런 맥락도 근거도 없이 문득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경기가 끝나고 서점에 들러 원고지와 만년필을 사와 그날 밤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이를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쑥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 느낌’이라며 영어의 ‘epiphany’란 단어로 설명한다. 직업학에서 말하는 ‘계획된 우연이론(planned happenstance theory)’, 즉 우연한 계기로 직업이 정해진다는 진로결정이론에 가까운 생각인 셈이다.

둘째, 규칙적으로 전력을 다한다. 장편소설을 쓸 때는 반드시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장을 쓴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장에서 멈추고, 뭔가 좀 안 된다 싶은 날도 어떻게든 노력해서 20장을 채운다. 하루 4, 5시간을 꼬박 책상에 앉아 몰입해야 나오는 분량이다. 그야말로 총력전이다. 하루키는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라는 후회는 없다. 충분한 시간과 에너지를 모조리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잘못 쓴 것이 있다면 작가로서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셋째, 체력 관리다. 전업작가가 되면서부터 달리기를 시작해 30년 넘게 거의 매일 한 시간 정도 달리기나 수영을 해왔다. 1년에 한 번은 마라톤 경기에 참가한다. “만일 충치가 욱신욱신 아프다면 책상을 마주하고 찬찬히 소설을 쓸 수 없다”는 그는 “체력이 떨어지면 사고능력도 미묘하게 쇠퇴한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하루키 소설의 등장인물 중에는 혼자 살아도 운동을 열심히 하거나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이 많다. 그런 면이 요즘 젊은 독자에게 어필한다는 견해도 있다. 현실이건 소설이건 나라와 세대에 관계없이 반듯한 직업관의 소유자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좋은 일이다.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노벨 문학상#한림원#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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