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한복을 입고 직장에 출근했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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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민속놀이는 우리 공동체의 뿌리
공동체 없는 축제는 한낱 술자리에 그쳐
처음 입은 한복처럼 어색하고 낯설어도 이으려는 노력해야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난생처음 한복을 입어 보았다. 어릴 적 산골에서 우리 집이 서당을 했고, 거기서 할아버지께 한문을 배웠지만 한복 입어볼 기회도 없이 자랐다. 많은 집이 그랬듯 어른들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집안이 기울며 그랬다.

막상 한복을 입고 출근을 하려니 용기가 필요했다. 우리의 전통 옷임에도 불구하고 한복을 입고 출근하는 것은 마치 독립운동하러 가는 듯한 용기가 필요하다. 지하철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은 나 하나였으며, 학교에 도착해서도 학생이나 동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추석을 맞으며 왜 나는 갑자기 한복을 입고 싶어졌던 것일까. 명절마다 우리의 전통이라는 게 처연하게 사라진 풍경을 느끼던 차, 더 늦기 전에 한복을 입어 보고 싶었다. 그 수많은 민속놀이와 세시풍속의 실종 혹은 와해가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와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480여 개의 민속놀이와 300여 개의 세시풍속이 채록되어 있다. 대부분 지금은 전승되지 않고 있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은 민간 중심의 어울림이자 축제였다. 20세기 후반 현대의 사회과학에서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사회자본이론’을 들이대기 무색할 정도로 그것은 어마어마한 공동체의 뿌리 자체였다.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의미는 보이지 않는 사회의 기둥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구성원들의 어울림, 구심력 그리고 역사가 선사하는 자긍심과 규범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영국과 일본의 축제를 관람할 때, 나는 어김없이 어울림의 카타르시스와 역사의 전승을 목격했다. 잉글랜드의 중부 동커스터 근처에는 봄마다 꽃잎으로 그림을 그려 전시를 하는 축제가 있다. 꽃잎을 사용해 그림을 만드는데 주민들은 몇 달 동안 함께 기획하고 어울린다. 일본의 아오모리 네부타 마쓰리는 8월 초 다양한 등을 수레에 싣고 밤거리를 행진한다. 300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으로 주민들이 함께 모여 축제를 준비하는 것을 일상생활로 여긴다. 교토의 기온 마쓰리나 오사카의 덴진 마쓰리는 1000년 이상 지속되어 온 축제다. 여기에 참여 기회를 얻은 청년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

세시풍속과 민속놀이를 잃어버린 우리는 최근 엄청난 수의 지역축제를 ‘발명’해 왔다. 자치제도의 부활 후 2000년을 전후해 1200여 개의 지역축제가 양산되었다. 지역축제의 역사를 평균 20년가량으로 보면 될 정도이다. 갑자기 축제를 발명하자니, 거기에 스토리 메이킹이 필요했다. 본래 역사로 전승되어야 할 스토리를 ‘만들자니’ 억지가 끼어들고 공감력이나 지속성도 약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상실한 세시풍속과 민속놀이는 전형적인 축제였다. 휴식과 놀이, 그리고 제의(祭儀)를 통한 어울림, 화해, 카타르시스가 거기 있었다. 자연이나 이웃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그것을 통해 소속감을 확인하고, 역사를 기억하며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버리고 새로운 축제를 수없이 발명하려 했던 셈이다.

단어를 놓고 보면 축제(祝祭)는 축(祝)과 제(祭)의 합성어다. 축은 놀이이고, 제는 공동체적 역사성이다. 여기서 제(祭)를 상실한 축(祝)은 포장마차와 술잔치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것마저도 관(官)이 주도하면 축제는 어김없이 행사로 된다. 더구나 시장이나 군수가 우두머리 행세를 하면 민(民)의 생명력과 어울림, 역사의 향기는 피어나지 않는다. 그런 축제로 관광객을 모으고 지역개발을 외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민(民)의 어울림과 자발적 참여 없이 지역경제를 살리려 슬로시티 인증을 받는 경우도 보았다. 주민의 삶과 철학이 변하지 않는데 하나의 브랜드로 ‘슬로시티’를 인증받는 건 비용 낭비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세시풍속과 민속놀이가 실종된 것은 일제의 침탈과 험난했던 근대화의 결과다. 이웃 간 어울림의 상실과 공동체성의 와해, 그리고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의 상실로 이것이 직결되었다고 나는 판단한다. 이것을 되살릴 수는 없을까? 겉으로는 세시풍속과 민속놀이가 죽은 듯 보이지만, 천 년 이상의 맥박이 뛰어온 것이기에 재생은 가능하지 않을까. 한복을 입고 출근한 날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한복#전통 옷#세시풍속#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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