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장애가 있는 친구와 내 아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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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학교에서 돌아온 민수(9)는 거실에 가방을 탁 던지며 “엄마, 은호 때문에 너무 짜증 나. 정말 같이 못 놀겠어”라고 말한다. 은호는 자폐 증상을 가진 같은 반 남자아이다. “그렇게 말하면 못써. 나쁜 사람이야. 은호는 아픈 아이잖아. 엄마가 그런 친구는 잘해 줘야 한다고 했잖아.” 엄마의 말에 민수는 억울한 듯 소리를 질렀다. “잘해 줬다고! 알림장 적는 것도 도와주고! 놀아도 주고! 근데 미니카 접어주고 있는데 갑자기 내 색종이를 죄다 가져다가 찢었단 말이야!” 

 통합교육을 하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이럴 때 부모들은 대부분 “네가 참아야지. 그런 걸로 힘들어하면 안 돼”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정말 힘들다. 본인도 어리고 미숙한데 무조건 이해하고 참고 도와주는 것은 솔직히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이럴 때는 우선 아이의 힘든 감정부터 수긍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맞아. 힘들지. 이해해”라고 말해준다. 아이가 “난 걔가 우리 반인 것이 싫어!”라고 말해도 “너 그러면 나쁜 사람이야”라고 혼내지 말고 “그런 마음도 들지. 이해는 해”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 다음 아이의 눈높이와 입장을 배려하여 어떻게 대처할지를 알려주는 것이 맞다. 그 친구가 소리 지르고 달려들거나 꼬집거나 때린다고 하면, 그때도 ‘그냥 참아라’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싫지. 피해. 네가 어떻게 그걸 다 참고 천사처럼 버티니? 엄마는 그러라고는 말 못 해. 억지로 같이 놀아주라고도 안 해. 그 친구를 위해서는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많이 애쓸 거야. 그 친구 엄마도 그 친구가 좀 더 잘 클 수 있도록 노력할 거야. 네가 무조건 참고 노력할 필요는 없어. 다만 엄마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그 친구를 적어도 싫어하거나 미워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것이야”라고 진지하게 말해준다. 그러면 아이가 그 친구를 조금 덜 힘들어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장애를 가진 친구’를 말할 때, ‘나와 다른 어려움이 있는 친구’라고 한다. 우리는 그런 친구를 말해줄 때, 애써 도움이 필요한 친구, 아픈 친구, 좀 모자란 아이, 돌봐주어야 할 대상, 장애우라는 말들을 쓴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이미 그 친구를 내 아이와 평등한 관계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는 그 친구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키가 유난히 작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큰 사람도 있다.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못하는 사람도 있다. 화를 잘 참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사람은 다 다르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어려움 또한 다 다르다. 그 어려움이 조금 더 강하고 많아서 더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을 가지고 있든, 그 강도가 어떠하든 그들도 우리와 똑같다. 아이에게도 장애가 있는 친구를 이렇게 설명해줘야 한다. 장애를 가진 친구는 나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의 종류가 다른 것뿐이라고. 다 양보하고 받아주라는 것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줘도 좋고 싫으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줘도 된다. 그래야 아이가 그 친구를 편안하게 ‘우리 반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가 그 친구와 놀 수 없어서 불편하다고 하면, “너, 너희 반 아이들이랑 다 친하고 다 잘 놀아?”라고 물어준다. 대부분 아니다. “그 친구도 그런 거야. 다른 친구랑 똑같아. 그 친구랑 놀고 싶으면 노는 것이고 놀기 싫은 날은 안 놀아도 좋아. 그렇다고 그 친구를 따돌리면 안 되는 거지. 같이 살아가는 거야.”

 좀 큰 아이들에게는 이런 얘기도 해준다. “모기가 옮기는 지카 바이러스 알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머리가 작게 태어난 아이는 생각하는 것이나 공부하는 것이 좀 어려울 수 있어. 그런데 그건 그 아이 잘못이 아니잖아. 얼마나 억울하겠니? 이건 누가 잘났고 못났고 노력하고 노력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야.” 더 큰 아이에게는 “예기치 않게 사고가 많이 나잖아. 사람은 어려움이 없다가 생기기도 해. 어제까지는 멀쩡했지만 다칠 수도 있는 거야. 어려움이 있건 없건 모든 인간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라고 말해준다.

 장애를 가진 친구를 이해하고 돕도록 하는 교육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우리 아이들에게 사람은 모두 각기 다른 어려움을 갖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건 하늘 아래 모두 평등하며, 서로 존중하며 어울려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가치를 먼저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장애우#장애를 가진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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