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쟁론]차기정부 대북정책

  • Array
  • 입력 2013년 2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북정책이 새 정부 출범 초기부터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채택에 대한 반발로 3차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코앞의 북핵 문제뿐 아니라 천안함 사태에 따른 대북 제재인 5·24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 등도 관심을 모으는 사안입니다. 박 당선인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새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로 내세웠습니다. 남북 간 신뢰를 쌓고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면 대규모 경제협력을 추진함으로써 대화와 협력의 선순환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신뢰회복’ ‘비핵화’ 등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웠지만 “유화 아니면 강경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대북정책을 추진하겠다”며 현 이명박 정부의 강경노선과도 선을 긋습니다. 차기 정부가 지향해야 할 대북정책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립니다. 현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북한과의 골을 깊게 한 만큼 유화책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상호주의 전략을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南이 먼저 손 내밀어 ‘신뢰의 끈’ 이어야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선 승리와 기쁨도 잠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제 임기 동안 풀어야 할 무거운 과제를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누구나 위기라고 하는 작금의 시대, 외교안보적 환경 역시 중차대한 전환점에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각축 속에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와 우경화가 가속화되는 동북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무사히 평화롭고 안전하게 이끌어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김정은의 북한은 여전히 유동적이고 한반도 평화는 아직도 위험하기만 하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사라졌고, 한반도 정세에 대한 개입력은 축소됐으며 대북 영향력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평화가 훼손되고 안보에 무능했다. 한반도 정세의 주인공이 아닌 구경꾼이 돼 버린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총체적 실패는 사실 남북관계 중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박 당선인이 이끄는 새 정부는 파탄지경에 빠진 남북관계를 올바로 개선하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북의 도발을 억지하고 서해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일은 남북관계 정상화에서 시작한다. 북핵과 장거리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증진시키는 일도 남북관계 복원에서 출발한다. 김정은의 북한을 잘 관리하고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도,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중-일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는 ‘동북아 평화 촉진자’의 역할도 모두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마침 박 당선인도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이른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핵심 공약으로 내놓았다.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가듯이 상호 신뢰를 구축해야만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신뢰는 말로만 가능하지 않다. 활자화된 공약이 저절로 신뢰를 담보하지 않는다.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일관된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도 말로는 손색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상생과 공영을 시작도 못한 채 적대와 갈등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여전히 북한의 양보와 선(先)행동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박 당선인이 2011년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북이 약속을 지켜야’ 남북간 신뢰가 가능하다. 대북 인프라 지원과 경협 활성화는 비핵화와 남북대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어야 가능하다. 결국 북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신뢰는 시작도 못하는 구조인 셈이다.

5·24 대북 제재 조치만 해도 북한의 선사과 없이는 상호 신뢰 형성이 무망하다. 박 당선인이 밝힌 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갈 수 없다’면 사과와 재발방지 없이 5·24조치를 풀고 가기 힘들고 이는 곧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자리 잡게 된다. 금강산 관광도 당장 재개가 아니라 북한의 행동을 선조건으로 요구한다면 남북관계는 처음부터 삐걱거릴 것이다. 북핵과 미사일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이후 북의 제멋대로 강경대응은 신뢰 형성의 첫 단추조차 끼우기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까칠한 북한을 상대로 힘겨운 기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은 인신공격성 비난이나 대남 강경 조치 등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가시적 성과는 정부 출범 후 2년이 지나서야 나왔다. 지구상 유례없는 북한을 상대로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내려면, 머릿속으로만 신뢰 구상을 할 것이 아니라 대결상황과 돌발사태에서도 화해·협력하겠다는 일관된 의지와 행동을 고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뢰를 위해 북의 행동을 기다릴 게 아니라 박 당선인이 먼저 손 내밀고 신뢰의 끈을 제공해야 한다. 어렵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할 일이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필자 소개 ::

서울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정책위원장을 역임했다. 2002년부터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北의 천안함-연평도 사과 먼저 받아야

오경섭 세종연구소 통일전략 연구실 연구위원
오경섭 세종연구소 통일전략 연구실 연구위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천안함·연평도 도발로 인해 꼬여버린 남북관계의 매듭을 하루빨리 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에 대한 사과도 받지 못한 채 무턱대고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5·24조치를 해제할 만한 북한의 대답도 듣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은 정부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북한은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는커녕 연평도 포격을 감행했고, 천안함 폭침은 남한의 조작이라는 둥 정당한 자위적 조치라는 둥 요설만 늘어놓았다. 북한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했고 제3차 핵실험마저 예고함으로써 남북관계 복원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박 당선인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서 밝힌 것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받아낸 후 남북관계 복원에 나서야 한다. 왜냐하면 북한의 나쁜 행동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원칙을 포기하면, 잘못 설정된 남북관계를 바로잡고 북한의 군사 도발을 억지할 방법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북한의 군사 도발에 대한 남한의 관용적 태도가 ‘군사 도발→냉각→대화→관계 복원’이라는 잘못된 게임의 룰을 고착화했다. 북한은 군사 도발을 감행한 후 어김없이 국제적 비난과 고립을 피하고 경제적 실리를 얻어낼 목적으로 대화 공세를 폈다. 이른바 의사협상전술이다. 역대 정부는 남북관계 냉각국면을 지속시키는 것보다 관계를 복원하는 게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미래 지향적 조치를 취했다. 예컨대 아웅산테러나 KAL858기 폭파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의 대화 제의에 호응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복원했다. 제1·2차 서해교전과 연평해전, 제1차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등에도 불구하고 대북포용정책의 기조를 유지했다.

역대 정부의 대응은 국제정치 이론에 어긋난다. 무한반복게임에서 상대의 나쁜 행동을 바꾸는 최고의 전략은 ‘맞대응(Tit for tat)’이다. 이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놓고 승률을 겨루는 대회에서 우승한 최고의 전략으로 꼽힌다. 처음에는 협력하지만 상대가 배반하면 응징으로 대응한다. 그러나 상대가 다시 협력적으로 나오면 다시 협력한다. 게임이 반복되면 상대는 내 협력의지를 알게 되고 둘 다 협력하는 전략을 취하게 된다.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상대의 행동이 바뀔 때까지 응징해야 한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맞대응 전략을 취한 적이 없었다.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기 위한 채찍다운 채찍을 휘두르지도 못했다. 그 결과 역대 정부는 북한의 나쁜 행동을 변화시키지도, 협력을 이끌어 내지도 못했다. 그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면서 5·24조치를 고수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차기 정부가 북한의 사과를 받지 않은 채 남북관계 복원에 나선다면 남북관계의 원칙을 바로잡으려 했던 현 정부의 대북정책 성과가 일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다. 또 정부가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묵인하고 5·24조치가 부적절했다고 자인하는 꼴이 되므로 집권 내내 북한의 전략에 끌려다닐 우려가 크다.

오랜 남북관계의 교훈은 북한에 일방적으로 양보만 해서는 결코 나쁜 행동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차기 정부는 남북관계 복원에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남북관계 개선을 더 절실히 원하는 쪽은 남한의 경제 지원이 필요한 북한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나쁜 복원은 차라리 냉각국면의 장기화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대북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차기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뛰어넘는 새로운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새 대북정책은 북한정권의 약화를 목표로 다양한 실행 프로그램을 담아야 한다. 북한문제의 해법은 북한정권을 약화시키는 길뿐이다.

오경섭 세종연구소 통일전략 연구실 연구위원
:: 필자 소개 ::

고려대에서 북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시민단체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에서 활동했으며, 계간 시대정신 편집장을 지냈다. 2009년부터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박근혜 정부#대북정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