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프리즘/허승호]고용? 줄인다, 세금? 돈 벌면 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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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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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자그마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기업 회장처럼 돈이 많지 않으며 정부 고위 당국자처럼 영향력을 갖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작은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나는 고용을 창출하여 가계에 도움을 주고, 세금을 내 국가경제에 기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복잡한 내용은 잘 모르지만 첨단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선진국 은행들이 ‘자산가치는 언제나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 아래 돈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대출을 해 줬고, 그것이 곪아터졌다는 것입니다.

친기업 vs 친수출 중심 대기업

우리나라가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것도 그때 다시 배우게 되었고, 그로 인해 외국 돈에 대한 우리 돈의 가치가 몇 달 사이에 40∼50%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원자재 수입 비중이 적지 않던 이 회사는 환율이 오르자 몇 달 사이에 매출원가가 50%가량 올랐고, 매출이익률 영업이익률은 감당 못할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내심 10여 년 전 외환위기 때처럼 조만간 모든 것이 안정을 되찾겠지 하고 기대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달랐습니다. 외환위기 땐 위기의 근원이 동아시아 등 개도국에 있었고 선진국 경제는 튼튼했기에 곧 안정됐지만 이번엔 선진국 쪽에 탈이 생겨서 문제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일단 살아야겠기에 직원들과 함께 이리 저리 뛰었고, 국내외 협력회사마다 돌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해 겨우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 대통령이 친기업 정책을 편다기에 내심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말씀하신 친기업은 ‘친(수출중심 대)기업’의 준말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회사는 내수중심 중소기업이었습니다.

정부가 ‘물가가 오르고 서민이 힘들어도 우선 수출이 잘돼야 해’ 하는 신념의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속상한 일도 많았지요. 그래도 기업인의 본분 중 하나가 ‘역경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주어진 환경에 몸을 맞춰 나갔습니다.

아 그런데, 이번에는 유럽 국가들이 휘청거린답니다. 지난번엔 개인이 감당 못할 빚을 져서 문제였는데 이번엔 국가가 감당 못할 빚을 져서 허덕인답니다. 이들을 그냥 죽게 놔두자니 물린 돈이 걱정되며 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겠고, 돈을 줘 살리자니 더 물리게 생겼고… 부자 나라들도 고민이 많답니다. 이 와중에 그놈의 ‘소규모 개방경제’는 또 출렁거립니다.

이웃 일본은 사방에서 KO 펀치를 맞아도 자기 나라 돈값이 안 떨어져서 고민이라는데 한국은 뒤늦게 물가 잡겠다며 원화 값이 비싸져도 용인하겠다고 해도 또 떨어집니다. 한 달 사이 엔화 대비 10% 절하. 4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반값, 으∼.

그 중소기업인, 초심 되찾을까

그래도 회사가 내실을 좀 쌓아 두었기에 3년 전처럼 밤잠을 못 자지는 않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굳게 마음을 먹습니다.

“우리는 내수중심 중소기업이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내 살길은 내가 찾는다. 고용? 가능하면 쥐어짜라. 소비, 지출? 무조건 줄여! 세금? 최대한 절세다. 이익 나면 더 내마. 정부? 너희 맘대로 하세요. 제발 딴죽만 걸지 마세요.”

회사는 강해졌으며 직원들도 좀 더 유능하고 독해졌습니다. 그 덕분에 당장 생존걱정은 안 할 만큼은 됐지요. 하지만 기업인으로서의 다음과 같은 ‘초심’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슬슬 걱정이 됩니다.

“나는 기업인이다. 고용과 납세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다.”

(※이상은 기자 지인의 넋두리다. 그는 진단시약을 생산하고 수출입하는 꽤 탄탄한 중소기업체의 젊은 사장이다. 그의 양해를 얻어 여기 옮긴다.)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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