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예술가들의 ‘배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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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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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문화부장
유윤종 문화부장
최근 지인들과 가진 저녁자리에서 화제는 ‘나는 가수다’를 비롯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쏠렸다. 한 친구가 “왜 그리 겨루는 프로그램이 많은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기는 걸 좋아해서 그러나” 했다. 맞는 분석은 아니다. 기자가 2008년 찾은 영국은 서바이벌 오디션 열풍의 한가운데 있었다. ‘브리티시 갓 탤런트’ 같은 일반인 대상 오디션 프로그램뿐 아니라 최근 한국에 등장한 연예인 대상 무용, 아이스댄싱 프로그램도 ‘성업’ 중이었다. 한국의 경우 3년 이상 늦게 그 열풍이 상륙했을 뿐이다.

한 음악인이 말을 받았다. “꼭 지는 쪽을 만들어내야 하나? 다들 개성이 있는데 어떤 게 낫다고 가려낼 필요 없잖아. 모차르트나 베토벤이라면 그런 데 나오겠어?”

그 말 역시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모차르트는 ‘소나티네집’의 작곡자로 사랑받는 클레멘티와 오스트리아 황제 앞에서 ‘건반연주 배틀’을 열었다. 당시 25세의 모차르트가 네 살 위인 클레멘티를 이겼다는 기록이 있다. 모차르트가 살리에리와 ‘단막 오페라 배틀’을 펼쳤다는 얘기엔 깜짝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두 사람은 1786년 쇤브룬 궁전에서 각각 단막 오페라를 상연해 황제와 귀족들의 평가를 구했다. 당시 경연은 살리에리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베토벤도 유명한 건반연주 배틀을 몇 차례나 치러냈다. 1796년 힘멜과의 겨루기도, 4년 뒤 슈타이벨트와의 경연도 모두 상대방이 자리를 황망히 떠나버릴 정도로 베토벤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름이 확립된 예술가나 연예인들의 배틀에 대해 ‘바람직한 일’이라고 단언하려는 것은 아니다.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한 사람의 예술세계를 승패로 가려내는 이벤트에 기분이 좋지는 않았을 법하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예술세계에서 ‘배틀’이 성했던 시기는 그 장르의 황금기와 일치했다. 예술가들이 누리던 인기와 사회의 높은 관심이 그들에게 불편한 승부까지도 요구했고, 또한 그 승부의 결과는 곧바로 대중들에게 전해지며 그 장르의 인기를 더욱 높였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 어떤 장르에서 ‘배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마음 편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초년 음악기자 시절, 종종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르의 연주가가 리사이틀을 갖는 경우가 있었다. 인터뷰 중 상대 연주가에게 덕담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반응이 비슷한 걸 보고 놀랐다. “그런 얘기 넣을 거면 인터뷰 안 한 걸로 합시다.” 하물며 같은 연주영역에서 비슷한 연배의 연주가가 나란히 무대에 선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사이좋은 화음도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같은 이종(異種) 영역에서나 가능하다. ‘배틀’은 아니지만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의 ‘쓰리 테너 콘서트’가 성악 대중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연주계에선) 상기하려는 사람이 적다.

당장 고전음악 연주가들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열자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린 그런 거 안 해도 된다”는 마음속에 마냥 안주하지는 않았으면 싶다. 역사상 최고의 예술작품은 작가주의와 대중주의의 치열하고도 건강한 긴장 속에서 나왔다. 대중들이 성가신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 식었다는 뜻일 수 있다. 물(대중) 없는 고기(예술가)가 불편을 모른다면 그것은 ‘박제’다.

유윤종 문화부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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