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신동엽]창조경제와 현명한 바보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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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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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높은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계산과 치밀한 계획이 중요하다고 믿고 이에 필요한 역량을 쌓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분야를 막론하고 큰 성과를 창출한 사람은 오히려 계산과 계획에 약하고 어수룩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향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창조적 천재에게 두드러진다. 이들은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할 때 예상되는 이익과 대가에 대한 계산 없이 마음에 끌리는 대로 선택하며 구체적 계획 없이 무작정 저지르고 보는 식의 행동을 하곤 한다. 모차르트를 비롯해 이런 예는 무수하다. 스티브 잡스도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의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는 기행으로 유명하다.

이런 바보스러운 행동은 성과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조직이론의 거장 마치 교수는 1971년에 저술한 ‘바보스러움의 기술(technology of foolishness)’이라는 논문에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마치 교수는 의사결정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유형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주어진 목적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에 관한 목적 추구 의사결정인데 냉철한 계산과 치밀한 계획을 통해 이루어지며 주어진 목적을 최소의 비용으로 달성하는 효율성이 핵심이다. 이에 비해 좀 더 근본적인 유형이 어떤 목적을 추구할 것인가에 관한 목적 발견 의사결정인데 새로운 미래 비전의 제시나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사업 분야 및 상품, 기술을 창출해내는 창조적 혁신이 이에 해당한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바보들

20세기 대량생산시대가 도래한 이래 대부분의 조직은 주어진 목적의 효율적 추구에 초점을 맞춰왔다. 좀 더 본질적인 새로운 목적의 발견은 경시되고 목적 추구 의사결정의 기술인 계산과 계획을 목적 발견 의사결정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영역의 탐색보다는 강점을 가진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면 되던 20세기 대량생산시대에는 큰 문제가 안 되었다.

그러나 최근 급속하게 진행된 경계파괴와 세계화, 기술혁신으로 기존 경쟁우위의 방어가 불가능해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경쟁우위를 남보다 먼저 만들어야 하는 21세기 창조경제에서 기존 목적의 효율적 추구에 대한 집착은 치명적 위기를 초래한다. GM 포드 씨티 시어스 등 20세기 대량생산시대를 주도하던 전설적 기업이 급속히 붕괴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21세기 창조경제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경쟁우위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하는 목적 발견의 시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목적의 발견에 필요한 의사결정 기술은 무엇일까?

마치 교수는 목적 추구 의사결정이 계산이나 계획과 같은 이성의 영역이라면 새로운 목적의 발견은 꿈과 상상력, 모험과 같은 유희의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목적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심각한 계산과 계획이 아니라 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애처럼 열린 마음으로 절실히 원하는 것을 꿈꾸고 미래의 가능성을 자유분방하게 상상하며 구체적 계획이 없더라도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모험적 행동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꿈 상상력 모험은 계산과 계획 중심의 전통적 의사결정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바보스럽게 보인다. 21세기 창조경제에서는 이런 장난 같은 행동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 창출의 기술이라는 뜻에서 마치 교수는 이를 바보스러움의 기술로 불렀다. 스티브 잡스도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항상 바보스러우려고 노력하라(Stay Foolish)’라는 연설로 21세기 창조경제에서 바보스러움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즉, 21세기에서 꿈과 상상력, 모험은 경쟁우위의 핵심 원천인 현명한 바보스러움(sensible foolishness)이다.

계산하지 말고 우선 도전을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현재 출중한 경쟁력을 보이긴 하지만 우려되는 바가 많다. 외환위기 이래 급속하게 확산된 연봉제 중심의 단기성과주의 때문이다. 단기성과주의가 조직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성과주의 규율과 긴장감을 주입함으로써 글로벌 경쟁력에 기여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단기성과주의는 모든 것을 당장의 이익계산에 따라 결정하도록 부추기고 불확실한 미래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창조적 모험정신을 위축시켰다.

내게 미래 경력을 상담하는 학생들은 어떤 분야가 미래에 유망할지 알고 싶어 한다. 나는 자기 내면 깊숙이 원하는 꿈이 뭐냐고 학생들에게 묻는다. 바보스러움의 기술은 어떤 일이 내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계산되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될지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상상하는 꿈에 따라 과감하게 그 일을 시도하는 현명한 바보가 21세기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21세기는 꿈꾸는 현명한 바보의 시대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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