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패법(防牌法)

  • 입력 2007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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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미국 메릴랜드 주(州) 유력 일간지 볼티모어선의 사건담당 기자 존 모리스는 금품이 오가는 부정선거 현장을 보도했다가 고발당한다. 경찰은 취재원을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여론은 모리스 편이었다. 비리를 추적 보도하려면 기자들이 취재원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방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법이 방패법(Shield Law)이다.

▷방패법도 처음엔 주에 따라 내용과 적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표준형’이 마련된 것은 1972년 켄터키 주 폴 브랜즈버그 기자의 마약 제조 실태 보도 사건이 계기가 됐다. 브랜즈버그 기자는 마약거래상의 이름을 공개하라는 수사 당국의 요구를 일축했다. 연방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법원은 “언론사가 법정에서 취재원을 숨길 수 있는 헌법적 권리는 없다”고 전제한 뒤 “다만 정부가 취재원을 알고 싶다면 ‘압도적이고 강력할’ 만큼 공익에 부합해야 하고 그것을 직접 증명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로부터 30여 년 뒤인 2003년 7월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기자가 국가기밀(리크 게이트)을 보도하면서 취재원 공개를 거부해 85일이나 수감되는 일이 생겼다. 이를 계기로 좀 더 엄격한 방패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16일 미 하원은 정부권력이 취재원 공개를 요청하려면 ‘검찰이 진실 파악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음을 입증해야 하고, 취재원 공개가 수사에 결정적이어야 하며, 임박하고 실질적인 국가안보 위협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내용의 강화된 방패법을 398 대 21이라는 압도적 표 차로 통과시켰다.

▷언론의 주요 감시대상인 정치인들이 입법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언론자유가 기자나 언론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 보호를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이게 바로 사회학자 폴 스타(프린스턴대) 교수가 말한 ‘신생국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정신적 힘’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기자들은 취재원 보호는커녕 정부의 취재원(공무원)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도 없는 처지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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