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쟁점토론]인간배아 복제 허용?

  • 입력 2000년 8월 18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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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국 정부가 치료 목적의 인간 배아(胚芽) 복제를 허용하기로 한 것을 계기로 생명복제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인류의 건강 증진과 의학 발전을 위해 인간배아 복제기술을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과 시민단체, 종교계는 배아도 잠재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연구 자료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윤리적 문제 외에도 인간 배아 복제가 인간 개체 복제로 이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이므로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찬성/난치병 치료에 획기적 디딤돌▼

과학 발전은 법률적, 윤리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회에 갑자기 나타나기 때문에 미리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를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997년 2월 영국의 이언 윌머트 박사는 복제양 돌리의 탄생을 보고하면서, 이제까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분화된 세포가 다시 미분화 단계의 줄기세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돌리의 탄생을 계기로 복제 인간의 탄생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인간 복제는 윤리적으로 매우 잘못된 일이므로 이를 엄격하게 금지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쥐 소의 복제 성공 사실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복제 인간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위험성이 널리 인식됐다.

생명을 복제하기 위한 동물 실험에서 알려진 여러 부작용들, 예를 들면 매우 낮은 핵 이식 성공율, 높은 유산율, 출생 전 사산율, 출생 후 사망율, 기형동물의 출생 빈도가 아주 높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볼 때 인간의 체세포를 복제해서 자궁내 이식 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하는 것은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왜 굳이 인간의 배아를 복제하려고 노력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른다.

인간 배아 연구에 대해서 나라마다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수정 후 14일까지만 연구가 가능하도록 허용되고 있다. 이는 14일 이후에는 배아가 줄기 세포에서 분화하기 시작하여 장기가 형성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종교에서는 인간의 생명은 수정된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믿고 있으나 생물학자들은 발생 전 단계까지의 연구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배아 줄기 세포를 체외에서 배양하면 세포가 분화하는 과정, 예를 들면 혈액을 형성하는 세포, 신경을 형성하는 세포, 연골을 형성하는 세포 따위를 관찰할 수 있다. 이런 세포 분화 과정에 관한 신비를 풀 수만 있다면 줄기 세포 연구를 통해서 인간의 노화 현상을 규명하고, 현대의 난치병인 암의 발생기전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또 인간 배아 복제 연구는 줄기 세포를 이용하여 혈액암이나 난치병의 치료 도구로 이용할 수 있는 세포 이식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 건강한 삶을 오래도록 누리게 하는 것이 의학의 목적이라면 의학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게 연구를 수행하고 이를 격려하며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과학자의 의무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인간 배아 복제 연구 허용은 복제인간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신비를 풀어 질병 치료에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는 이 시점에서 인간 배아 복제 연구는 허용되어야 한다.

문신용(서울의대 교수·산부인과)

▼반대/개체복제 불붙여 인류미래 위협▼

최근 영국 정부가 연내 의회에 제출키로 했다는 치료목적의 인간배아 복제 허용계획에 대해 지금 어떤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어찌 보면 호들갑을 떠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영국 정부의 이번 계획안이 과연 의회를 통과할지 어떨지도 모를 일이지만, 무엇보다 이번 인간배아 복제기술이 이미 보도된 대로 최종 인간을 복제하는 소위 개체복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지금 세계적으로도 큰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역시 그 기술의 잠재적 위험 때문이다.

연구나 치료목적의 인간배아 복제허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기술이 자궁착상 이전 단계의 배아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생식을 목적으로 한 배아복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단계의 배아는 이미 체외수정을 통해 만들어진 수정난과 생명수준에서 다를 것이 없고, 따라서 체외수정을 현실적으로 금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초기단계의 배아를 이용해 연구나 치료 목적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간배아 복제 문제를 그 생명가치나 도덕적 지위 문제로 다루어 윤리논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리 설득력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보다는 임신을 위한 인공적 수정난 생산 때와 달리 인간배아의 복제는 그것이 인간개체 복제로 이어질 가능성과 이 경우 초래될 사회, 문화, 종교 등 전체 인류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도 크다는 점을 문제삼을 필요가 있다.

연구나 치료목적으로라도 배아복제가 허용되는 경우 비록 논리적 필연은 아니지만 과학기술의 실천적 측면으로 볼 때 이것이 개체인간 복제로 이어질 개연성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1997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 이후 세계 여러 나라와 각종 국제협력기구들이 서둘러 인간개체 복제를 금지하는 법과 규약을 만든 것도 바로 이런 우려 때문이다.

이 일이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는 또 하나의 큰 이유는 장차 이 기술을 장악하는 것은 과학자가 아닌 기업가들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치료목적으로 초기단계의 인간배아 복제기술을 허용하려는 영국 정부의 방침은 어찌 보면 이런 국제적 정서와 분위기 속에서 동물복제와 인간복제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를 이용한 생명공학 산업의 개발 동기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생명복제와 관련한 기술문제는 단순한 과학이나 의학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중대한 사회문제인 동시에 인류의 미래를 결정짓는 철학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과학자들이나 의학자들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무관심한 이유는 실제로 이 일을 통해 고통받는 개인이 없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인류의 미래와 관련된 생명복제 기술과 그 개발정책에 대해 일반인들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감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맹광호(가톨릭의대 교수·예방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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