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황창규]强小企業으로 거듭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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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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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부품을 싼값에 공급받고 싶은 건 대기업의 생리이고, 좋은 가격에 많은 양을 공급하고 싶은 건 중소기업의 소망이다.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은 간혹 품질을 희생하면서라도 이윤 확보에 사활을 걸다 보니 미래 준비에 눈 돌릴 여력이 없다. 종업원 300∼1000명을 둔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매출액에서 연구개발(R&D)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2%다. 미국 독일 일본의 중소기업은 2∼4%대다.

선진국 정부 인사들을 만나면 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하는지 물어보곤 한다. 필요에 따라 경쟁과 협력이 이루어지는 시장경제에서 인위적 성장 정책은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다. 다만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토양을 다지는 노력은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 전 일본 교토의 신소재, 장비 업체들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교토식 경영’은 다양성과 역동성을 중시하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벤처의 모습을 띠고 있다.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을 중시하는 ‘도쿄식 경영’과는 구별된다. 소규모로 출발한 교토의 기업들은 오랜 기간 특화된 기술 개발에 매진한 결과 기술 수준이 대기업을 넘어섰다.

R&D 투자, 선진국의 절반

독일 사례도 흥미롭다. 규모는 작지만 세계 1위가 될 만한 경쟁력을 갖춘 2000개의 ‘히든 챔피언’ 리스트에서 1300개가 독일 기업이다. 독일의 수출 구조는 경제위기 시 직격탄을 맞는 소비재 위주가 아니라 75%가 중간재다. 품질로 독일을 대체할 제품이 많지 않다 보니 경제위기에서도 수출이 늘어난다. 독일 기업들은 출혈적인 가격 경쟁에서 자유로운 블루오션에서 조용히 움직인다. 예컨대 고속철도 연결기를 생산하는 ‘호이트’사는 독일 고속철인 ICE는 물론이고 TGV KTX 신칸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고속철을 고객으로 한다. 고속철 수주 경쟁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서도 확실한 사업 참여자로 남는 것이다.

우리도 예전에는 정보기술(IT) 완성품 업체가 독자적으로 사양을 결정한 후 이러이러한 반도체를 쓰겠으니 공급해 달라고 요청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반도체 업체가 완성품의 설계 과정부터 참여해 사양 및 출시 시기까지도 함께 조율하며 IT 산업을 리드한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반도체 업체와 장비, 재료 업체들과의 긴밀한 협력이 주효했다. 최첨단 반도체 기술을 상용화하려면 장비나 재료 역시 혁신적이어야 한다. 이들을 그저 원가절감 대상으로만 인식했다면 반도체가 어떻게 IT 산업을 이끌어 갈 수 있었겠는가.

2000∼2009년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 재료 업체 수는 공히 3배 성장했으며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회사도 다수 탄생했다. 완성품 경쟁력이 후방 산업의 경쟁력을 도미노 식으로 이끌어 이들을 단순 부품 공급자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 관계로 끌어올린 사례다.

올 10월 전략기획단은 조기창출형 미래선도사업 R&D 계획을 발표했다. 10년 후 100조 원 매출이 기대되는 이 계획의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가장 신경 썼던 게 바로 ‘융복합화’와 ‘동반성장’이었다. 전자는 단일 제품의 점유율 확대를 통해 거세게 도전하는 중국을 가장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방안이다. 후자는 산업에코시스템을 완성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동반성장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방안이다. 중소기업 문제의 해법을 국가 R&D 제도의 혁신에서 찾은 것이다.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이끌기 위해 게임의 룰을 바꾸자. 첫째, 정부는 국가 차원의 동반성장 비즈니스 모델을 더 많이 고안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의 부품과 일본의 소재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건 정부의 몫이다. 둘째, 대기업의 중소기업 평가 기준은 단가보다 품질이어야 한다. 품질이 월등하면 좀 비싸도 과감히 구매하자. 쇼핑하는 듯한 구매 관행을 버리고, 국가 전체 경쟁력 관점에서 소명 의식을 가질 때다.

제품구매 기준, 단가보다 품질로


마지막으로 당사자인 중소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핵심 역량을 보유한 중소기업에 대한 의미 있는 지원을 늘려야 하겠지만 무분별한 지원은 지양할 방침이다. 정부 지원만 기다리는 의존적 모습에서 탈피해 대기업이 제 발로 찾아올 정도의 기술을 보유한 강소기업(强小企業)으로 거듭나자. 강소기업은 인위적으로 만들지 못한다. 자전거의 두 바퀴인 주력 산업, 미래 신산업의 균형 발전 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할 작지만 강한 기업을 기대한다.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 3각 편대 중 하나라도 삐끗하면 구심력은 약화되고 원심력이 강화된다. 대기업이여! 여러분이 갑이고 중소기업은 을이던 시절은 갔다. 이젠 모두 갑이다. 중소기업이여! 여러분을 향한 요구는 준엄하다. 정부는 성장의 토양을 만들겠으니, 지원에만 목매지 말고 자생하라.

황창규 객원논설위원·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 cghwang@mk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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