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풍속 이야기 20선]<10>조선후기 풍속의 재구성

  • 입력 2009년 2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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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가 도박, 노름의 의미로 사용된 구체적 사례는 조선후기 편지와 소설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양반가의 자제로서 도박에 빠진 친구에게 잡기(雜技)를 멀리하라고 당부하는 18세기 관료였던 유한준의 편지를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조선후기 소설 ‘이춘풍전’에서 이춘풍이 술과 여색 및 투전과 골패를 알지 못하는 삶보다 주·색·잡기, 주색잡기 사랑하기를 남아의 상사(常事)라고 언급한 부분은 눈길을 끈다.”》

사대부 나라의 해학적 뒷모습

그룹 ‘소녀시대’가 신곡 ‘Gee’의 게다리춤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게처럼 좌우로 오가면서 팔다리를 우스꽝스럽게 움직이는 장난기 어린 모습이 청순하게 다가온다. 게살 피자 광고에서 코맹맹이 소리로 덩치 큰 게 인형들과 함께 ‘오∼게살 몽∼땅’을 부르는 배우 문근영 씨는 또 어떤가. 성숙한 여성의 모습을 풍기지만 여전히 귀엽다. 두 여성 아이콘은 모두 옆걸음 치는 게의 이미지에서 귀여움과 장난기를 끌어냈다.

조선후기 서민문학과 풍속화를 씨줄과 날줄 삼아 당시의 시정풍속을 재구성한 이 책에 따르면 게는 질펀한 육담(肉談)의 대상이었다. ‘청구영언’에 실린 한 사설시조에 대한 풀이를 보자. 게장 파는 장사치와 여인이 펼치는 대화로 구성된 이 사설시조에서 게의 외모를 표현한 ‘외골내육(外骨內肉) 양목(兩目)이 상천(上天)’하는 표현은 남성 성기를 빗댄 표현이었다. 게의 움직임을 묘사한 ‘전행(前行) 후행(後行) 소(小)아리 팔족(八足) 대(大)아리 이족(二足)’은 또 어떤가. 작은 발 8개는 한 몸이 된 남녀의 팔다리 수를 의미하고 큰 발 2개는 그들의 머리 수라면 어떤 그림이 떠오르는가. 옆걸음질 치는 게라면 마땅히 좌행우행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터인데 전행후행이란 표현은 또 웬 말이란 말인가. 유식한 척 한문 섞어 너스레를 떠는 장사치에게 “거북하게 말하지 말고 그냥 ‘게젓’이라 하려무나”라고 여인이 쏘아붙이는 종장은 비슷한 발음을 활용한 익살의 정점이다.

‘사대부의 나라’로 일컬어지던 조선이었지만 그 성(性)풍속은 이처럼 기발한 상상력이 깃들 만큼 노골적이면서도 해학적이었다.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최근 집중 조명을 받은 혜원 신윤복보다 그의 스승인 단원 김홍도가 더 노골적인 춘화(春畵)를 그렸음을 확인하는 것도 이 책의 재미다. 하지만 단원의 춘화보다 혜원의 ‘춘화 아닌 춘화’가 더 깊은 맛을 낸다. 저 멀리 폭포수가 웅덩이로 떨어지는 풍경을 배경으로 굳게 문이 닫힌 방문 앞에 주안상을 들고 주춤거리는 하녀를 그린 ‘사시장춘(四時長春)’. 얼핏 밋밋해 보이는 그림을 자세히 보자. 툇마루 위에 급하게 벗어놓은 두 켤레의 신발과 저택 기둥에 적혀 있는 ‘일년 내내 봄’이라는 글귀를 읽노라면 폭포수와 웅덩이를 그린 원경(遠景)의 숨은 뜻에 웃음이 절로 난다.

2부가 성풍속이라면 1부는 생활풍속을 다룬다. 춘화류(春花柳) 하청풍(夏淸風) 추월명(秋月明) 동설경(冬雪景)이라고 하여 한양 살던 사람들이 자주 찾았던 봄 꽃놀이, 여름 물놀이, 가을 달구경, 겨울 눈구경의 경승지가 각각 어디였고 그 놀이문화는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다. 판소리 학술상을 수상한 저자는 판소리를 통해 당시 서민들이 생계를 위해 얼마나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는지도 소개한다. 또 재테크의 일환으로 이자놀이가 성행했으며 오늘날 ‘다양한 여가활동’으로 통하는 잡기가 곧 노름을 의미했음도 확인할 수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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