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미디어]사이버DJ ‘윌슨’ 만든 KBS ‘올 댓 차트’ 윤성현PD

  • 입력 2007년 10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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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FM 음악 순위프로그램 ‘올 댓 차트’의 윤성현 PD가 컴퓨터 프로그램과 음성편집기를 이용해 가상의 DJ ‘윌슨’의 목소리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 제공 KBS
KBS FM 음악 순위프로그램 ‘올 댓 차트’의 윤성현 PD가 컴퓨터 프로그램과 음성편집기를 이용해 가상의 DJ ‘윌슨’의 목소리를 제작하고 있다. 사진 제공 KBS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직장인, 학생들은 라디오 그만 들으시고 어서 주무세요∼. 라디오 듣느라 여러분의 소중한 하루를 망칠 수는 없으니까요. 팝음악과 함께합니다. 섹시한 제니퍼 로페즈 누나의 ‘Do It Well’∼.”

흔히 들을 수 있는 나긋나긋한 라디오 DJ의 멘트가 아니다. 다소 듣기 거북한 기계음에 째지는 목소리를 내는 ‘윌슨’의 목소리다. 윌슨은 16일부터 매일 오전 2시 방송되고 있는 KBS FM(89.1MHz) 음악 순위프로그램 ‘올 댓 차트’의 사이버 DJ다.

보통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 현장 하면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소개하는 DJ, 스튜디오 부스 밖에서 사인 보내느라 분주한 PD가 떠오르지만 윌슨이 진행 중인 프로그램의 제작 현장은 달랐다. 1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라디오국에서 만난 ‘올 댓 차트’ 담당 윤성현(30) PD는 혼자 노트북과 편집기를 놓고 씨름 중이었다.

작업은 윌슨 목소리 만들기부터 시작된다. 선곡을 한 후 그 곡을 소개하는 DJ의 멘트, 청취자와의 대화 등은 글자를 목소리로 바꾸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든다. 이를 음성편집기(D-cart)로 음악과 함께 최종 편집한다.

“AD 시절 한 청취자가 배구공을 선물(위 사진)로 보냈어요. 스튜디오에서 심심하지 말라고요.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떨어진 톰 행크스가 배구공 ‘윌슨’과 대화를 하니까…. 그때 배구공에 목소리를 입혀 DJ와 말하는 게스트로 활용하는 게 어떨까 해서 시작했어요.”

이후 윤 PD는 게스트가 아닌 메인 DJ로 만들기 위해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일단 성격은 ‘까칠한’ 스타일로, 나이와 성은 ‘섹시한 여성그룹을 밝히는 25세 남성’으로 설정했다. “첫 방송 때 ‘심야에 거부감이 크다’는 사람이 많았어요. 감성 어린 목소리가 필요한 라디오 DJ가 기계 소리를 내는 사이버 DJ라고 하니…. 하지만 점차 끌린다는 사람들도 늘어났어요.”

보통 1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원은 PD, DJ 1∼2 명, 작가 등 평균 4명. 윤 PD의 작업은 ‘1인 제작’ ‘탈스튜디오 제작’인 셈. 그의 작업은 사람과 미디어의 접점에 있다. 그는 “미디어와 디지털의 발달로 사이버 가수 아담 등 가상 캐릭터가 많이 생겼지만 대부분 망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사람이란 느낌을 못 줘서 그런 것인 만큼 윌슨에게는 인간다움을 입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도에 대해 라디오 미디어의 변화를 언급했다. “라디오는 아날로그고 그 순수성을 지켜야 해 디지털로 만든 목소리가 안 어울릴 수 있지만, 라디오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미디어의 모습일 수도 있는, 하나의 실험입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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