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윤창효]아궁이 장작불이 불러오는 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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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효
겨울에는 산에서 할 일이 별로 없다. 지난겨울의 혹한은 대단했다. 그래서 겨울 3개월 정도는 주로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을 한다. 게을러도 되고 따뜻해서 좋기는 하지만 답답하다.

서울의 웬만한 겨울 일상은 밀폐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주차도 주로 지하에 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곧바로 아파트 현관 앞에 도착한다. 지하철을 타도 지하에서 계속 이동한다. 산촌에 비하면 따뜻하고 편하긴 하지만 산촌 맛을 본 나로서는 정말 답답하다.

그래서 겨울에도 시골집을 가끔 다녀왔는데 이번 겨울은 혹한도 심하고 서울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밀려 있어서 자주 가지를 못했다. 지난겨울 혹한 때문에 걱정하던 일이 터졌다. 시골 동네 할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에서 물이 흘러나온다는 얘기다. 동파 방지를 위하여 물이 조금씩 흐르도록 수도꼭지를 틀어 놓았는데 영하 20도 이하의 기온이 계속되다 보니 힘없이 흐르던 물이 얼어 버렸다. 해빙이 되면서 보일러가 동파된 것이 분명하다.

부랴부랴 달려갔다. 보일러 이음매의 노출된 부분이 얼었다 녹으면서 터져 버렸다. 일요일이라 수리가 안 됐다. 아궁이에 때는 장작불만이 얼어 있는 방바닥을 녹이는 유일한 방법이다. 열심히 장작을 때 보지만 어느 세월에 이 엄동을 녹이고 잠을 잘 수 있나.

다음 날 아침 산에 있는 나의 반려작물인 산마늘(명이나물·사진) 상황을 살피러 산으로 갔다. 이게 웬일인가. 눈이 오고 있었다. 무릎 높이까지 쌓였다. 동네는 해발 400m 정도라 비와 눈이 섞여 왔지만 산은 해발 700m라 온도 차가 3, 4도 정도 나다 보니 비가 눈으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완전 다른 세상으로 설국이 돼 있었다.

쌓인 눈을 뒤집고 지난가을에 뿌려 놓은 산마늘 씨를 확인했다. 긴가민가하면서 뿌렸던 씨가 발아해 혹한을 견뎌내며 실 같은 몸체를 내밀고 있었다. 감동이었다. 씨를 뿌려서 생명을 키워 보긴 난생처음이다.

봄은 어린 새싹들에게는 혹독하다. 낮에는 봄볕 따뜻한 기운에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새싹들이 자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밤에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다. 기온차가 15도 이상까지 난다. 땅이 꽁꽁 얼어버린다. 낮에 녹았던 땅은 밤에 다시 얼면서 실 같은 어린 새싹의 뿌리가 공중부양을 하듯 위로 떠 버린다. 이렇게 봄에는 땅이 밤낮으로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새싹들에게 혹독한 자생 능력을 키워준다. 생명을 잇는다는 것은 이처럼 많은 고난을 거치는 것이다. 봄기운은 새 희망이고 새 생명이지만 산촌의 봄은 사람에게나 임산물에게나 더 멀게 느껴진다.
 
윤창효

※필자는 서울에서 정보기술(IT) 업계에 종사하다 현재 경남 거창을 오가며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겨울#산마늘#명이나물#반려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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